20일 아침 “가짜뉴스 피해액이 연 30조 원에 달한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정부 1년 예산의 10분의 1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손실액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세계일보는 “연 30조 피해 가짜뉴스, 민·형사 책임 물어야”라는 사설까지 냈다.  

통계의 출처는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19일 발표한 ‘가짜뉴스의 경제적 비용 추정과 시사점’ 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짜뉴스의 경제적 비용은 연 30조900억 원이고 이 중 당사자 피해 금액이 개인(5400억 원)과 기업(22조2300억 원)에 발생한다. 추가로 관련 법규를 위반했을 때 사회적인 피해금액은 7조3200억 원에 달한다.

▲ 20일 신문들은 '가짜뉴스 30조 손실'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와 사설을 내보냈다.
▲ 20일 신문들은 '가짜뉴스 30조 손실'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와 사설을 내보냈다.

무지막지한 30조 원 손실이라는 결론은 어떻게 도출한 것일까. 계산 과정을 들여다보면 가정에 가정을 거듭하고 자의적인 방식으로 무리하게 결론을 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가짜뉴스의 ‘양’을 보고서는 전체 뉴스의 1%인 연간 13만 건이라고 추정했다. 왜 1%일까. 보고서는 “가짜뉴스의 실제 건수를 추정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자료의 한계로 어렵기 때문에, 분석을 위해 만약 가짜뉴스 건수가 실제 기사의 1%정도 유포된다고 가정했다”면서 “현재 유통되는 기사 중 1%가 가짜뉴스라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산정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임의로 정한 것이다.

보고서는 가짜뉴스 유포에 따라 개인에게 ‘정신적 경제적 피해’가, 기업에는 ‘영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피해액을 산정했다. 개인과 기업에 대해서는 언론진흥재단의 통계를 인용해 실제 기사의 소재 비율에 맞춰 계산했다. 기업관련 기사 비율이 30.7%였기 때문에 가짜뉴스 추정치 12만건 중 4만건을 기업관련 가짜뉴스 기사로 본 것이다.

그러나 피해 금액 산정 과정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개인의 경우 1달 가량 가짜뉴스 피해가 지속된다고 가정해 월평균 소득을 피해금액으로 정했다. 국회의원이 가짜뉴스로 고통을 받는다면, 그의 월급만큼 피해가 있다고 본 것이다. 기업에는 가짜뉴스로 피해를 입는 기간을 1일로 가정해 상장기업의 하루 평균 매출액을 피해금액으로 계산했다. 

1달과 1일이라는 기준의 근거도 없을뿐더러, 가짜뉴스가 있다고 해서 정치인의 한달 월급만큼 손해를 보고, 기업의 하루 매출만큼 손해를 본다는 것은 비약이다.

▲ 현대경제연구원이 추정한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액.
▲ 현대경제연구원이 추정한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액.

‘사회적 신뢰훼손 비용’은 숫자로 나타내기 힘든 사회적 신뢰를 ‘비용’으로 환산했다는 점부터 자의적이다. 보고서는 정보통신망법 70조 위반에 따른 벌금형 액수와 징역형을 돈으로 환산해 사회적 피해비용을 가정했는데, 이 또한 부적절하다. 정보통신망법 70조는 ‘허위사실’ 뿐만 아니라 ‘사실을 다룰 경우’의 명예훼손도 처벌하기 때문에 가짜뉴스 피해의 근거로 산정하기 부적절하다.

또, 보고서는 형량을 비용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최대형량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실제 형량과는 거리가 있다. 보고서 역시 “실제 판결에 내려진 형량 대비 과대 추정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시인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가짜뉴스 문제가 심각하다는 근거로 언론중재 청구가 1990년에 비해 30배 이상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1990년은 인터넷언론이 등장하기 이전으로 언론의 수가 현재보다 현저히 적다보니 중재 청구가 적을 수밖에 없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 중재청구가 급증했는데 이는 구원파의 민원제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일반적인 통계로 보기 힘들다.

언론중재 청구 건수가 늘었다고 해도 가짜뉴스 문제와는 무관하다. 언론중재 청구는 사실을 다룬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있는 데다 청구 대상이어도 문제가 없는 보도일 수 있다. 언론중재위는 언론사의 보도만 다루기 때문에 언론의 기사를 따라한 통상적인 가짜뉴스는 청구 대상도 아니다.

보고서 역시 “가짜뉴스에 대한 논의가 이제 초기 단계이므로 가짜뉴스에 대한 정확한 현황파악이 현재로서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어디까지나 ‘추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추정’도 ‘추정’ 나름이다. 기본 전제가 돼야 할 대상과 기간 등 핵심적인 지표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으면서 통계를 내는 것 자체가 무리한 시도다. 제대로 파악하려면 가짜뉴스가 어떻게 유통되고 어떤 소재를 어느 비율로 다루고, 독자 입장에서 어느 정도가 사실로 인식되는지 여부도 알아야 한다.

이처럼 문제가 많은 통계지만 앞으로도 가짜뉴스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기사와 칼럼에 근거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유명 연구원의 보고서라는 이유로 ‘공신력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미 이 같은 왜곡은 있었다.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가짜뉴스 대책을 발표하면서 인터넷 게시글 5870건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통계는 '가짜뉴스'와는 엄연히 다른 '비방', '여론조사 공표 항목 미기재' 등을 포함한 '선거법 위반 게시글' 현황으로 가짜뉴스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이후 언론은 "가짜뉴스 5870건을 삭제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가짜뉴스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미국에서도 가짜뉴스가 어느 정도의 피해를 미쳤는지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한국에서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실증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할 때다. 무리한 통계를 내는 건 ‘근거없는 가짜뉴스 공포’만 확대재생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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