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결국 13일 사퇴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13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국민의당을 향한 ‘머리자르기’ 발언을 대신 사과하면서, 국민의당이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 참여하기로 하면서다. 국민의당의 추경 심사 복귀로 과반이 확보돼 추경 통과에는 파란 불이 켜졌다. 이 가운데 미국은 한·미 FTA 개정 협상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文, 조대엽 버리고 송영무 택했다

청와대는 조대엽의 손을 놓고 추경을 잡는 쪽을 선택했다. 조대엽 후보자는 13일 노동부 출입기자들에게 “정국 타개의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사퇴의 길을 택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청와대는 야당이 그동안 반대해온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국회로 보내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발언에 대해 ‘대리 사과’하는 모습을 취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13일 낮 국회에서 김동철 원내대표와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국민의당에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 진심으로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고 박주선 비대위원장이 전했다. 이날 자리에서 야당이 반대해왔던 조대엽·송영무 두 후보자 중 한 사람만 임명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대화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 중앙일보 1면 기사 갈무리.
▲ 중앙일보 1면 기사 갈무리.
국민의당은 이 만남 직후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추경안과 정부조직법 심사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청와대를 방문해 문 대통령을 만나 “추경 처리 등을 위한 최소한의 조처를 해달라”고 건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초 13일 오전까지만 해도 ‘인사는 인사, 추경은 추경’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2시30분 경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을 면담한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 이 직후 조대엽 후보자는 자진사퇴 뜻을 언론에 밝혔다.

청와대가 내밀 수 있었던 사실상 ‘마지막 카드’였던 조대엽 후보자 사퇴와 추미애 대표 발언 대리사과를 국민의당이 받아들면서 일단 추경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가능성은 높아진 상황이다. 40석의 의석을 가진 국민의당이 복귀하면 120석을 가진 민주당과 합쳐 이미 과반을 넘기기 때문에 보수야당 없이도 추경안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조선과 동아 등은 송영무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에 초점을 맞춰 비판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조 후보에 비해 하자가 더 심각한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는 야당들 반대에도 임명을 강행했다”며 “국무위원 자리를 놓고 어떤 사람이 적임자인지, 부적격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야당과 주고받기 거래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물밑 조율로 ‘조대엽 카드’를 버리는 대신 송 장관은 살리면서 추경 심의와 맞바꾸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반면 중앙일보는 청와대의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청와대 입장에선 여당이 공격해온 두 명 중 한 명을 내어준 셈”이라며 “만시지탄은 있지만 어제 청와대가 보여준 정치력은 평가할 만 하다”며 청와대가 보여준 협치의 자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겨레는 청와대와 여당이 협치의 자세를 보였으니 이제 야당도 국회 정상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국회 공전을 끝내고 정상화하는 열쇠는 이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손으로 넘어갔다”며 “청와대가 이미 송 후보자를 국방부 장관에 임명했고 조 후보자는 스스로 사퇴했으니 더는 국회를 파행시킬 이유도, 명분도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일부 언론들은 청와대가 추미애 민주당 대표 대신 사과하는 모습 때문에 추미애 대표의 입장이 애매해진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국민의당을 찾았던 시점, 추 대표는 한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 촬영 중이었다. 한국일보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사과 사실을 전해 들은 추 대표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 한국일보 3면 기사 갈무리.
▲ 한국일보 3면 기사 갈무리.
특히 임종석 실장과 전병헌 수석이 박주선 비대위원장을 만났을 때 추미애 대표에 대해 직접적으로 거론했는지를 두고 잠시 진실공방이 벌어지면서 모양새가 더욱 이상해지기도 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국민의당의 사과방문 직후 “임 실장이 추미애 대표에 대해 언급한 바가 전혀 없다”고 했는데, 재차 임 실장이 나서 “추 대표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이 맞다”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美,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하자”

미국이 1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검토하기 위한 공동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사실상 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미 FTA 개정협상 국면이 시작된 것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현지시각 12일 성명을 내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대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무역장벽 제거와 한·미 FTA 개정협상 개시를 위한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개최를 한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동위 개최와 별개로 FTA 개정 협상을 개시하려면 우리 측의 동의가 필수적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미국 측의 요구가 강경해 한미 FTA개정 협상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당당하게 (개정 협상에) 임하되 모든 가능성을 예단하지 말고 열어두고 준비하라”고 강조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대표가 특별 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하면서 가장 크게 문제삼은 부분은 미국의 무역적자 폭 증가다. 미국의 대(對) 한국 무역적자는 한·미 FTA 발효 전인 2011년 116억달러에서 지난해 233억 달러로 늘었다. 미국은 승용차 연비 규제와 한국을 통한 중국 철강의 덤핑 수출을 대표적인 ‘불공정 무역’ 사례로 지목해왔고, 법률시장 개방과 스크린 쿼터제, 신문·방송 등에 대한 외국지분투자 허용 등 서비스 분야 개방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당초 정부는 미국의 한·미 FTA개정협상 요구 시점을 내년 이후로 예상했다. 트럼프 정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을 최우선 통상 현안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6개월 이상 앞당겨 미국이 한·미FTA 개정 협상을 서두르는 것은 미국 내 정치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 내에서 정치적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러스트벨트(쇠락한 제조업 도시) 등 백인 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미 FTA 개정을 한층 더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 FTA 개정으로 큰 이익을 얻어낼 게 없는 우리 정부로서는 결국 수세에 몰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한겨레 1면 기사 갈무리.
▲ 한겨레 1면 기사 갈무리.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공동위 개최 시점연기를 요청할 계획이다.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해 통상교섭본부 설치는 물론 FTA 공동위 우리 측 의장인 통상교섭본부장도 임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상기 후보 “채동욱 낙마, 조사하겠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퇴 의혹을 조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의 봐주기식 수사로 철저하게 진행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13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박 후보자는 “장관이 된다면 적폐청산 차원에서 채 전 총장에 대한 청와대와 법무부의 뒷조사와 낙마 의혹 등에 대해 진상조사할 의향이 있느냐”는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질문에 “취임하면 그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 조치가 필요하다면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박 후보자는 우 전 수석에 대한 검찰조사에 대해서도 “철저히 의혹 전반에 대해 수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정치권력에 줄댄 검사들을 솎아내야 된다고 생각하냐”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정치적 편향성이 확인된다면 (수사팀 검사를) 인산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박 후보자는 이날 인사청문회를 통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법무부의 탈검찰화 등 법무부·검찰개혁 과제도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박상기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를 통해 청와대의 ‘검찰 수사지휘권 박탈’에 대한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박상기 법무장관 후보자가 서면답변서에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유지한다”는 취지를 담아 작성했으나 청와대가 이를 제지했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1면 기사 갈무리.
▲ 조선일보 1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 후보자의 최종 답변서에는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행사를 전제한다’고 돼 있던 문구가 빠졌으며, 박 후보자도 이날 청문회에서 경찰 수사권 독립에 대해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박 후보자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라는 서면 질문에 검찰이 경찰의 수사를 지휘할 수 있는 수사지휘권을 유지한다는 취지의 문구를 작성했다”며 “이를 알게 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법무부를 통해 ‘수사지휘권 행사’ 부분을 삭제해달라고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 검경 수사권 분리·조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고 해석되는 부분이다.

신고리 5·6호기 일시중단 결정 불발

신고리원전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할 예정이던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한수원 노조의 저지로 무산됐다. 노조는 공사 중단을 반대해왔고 반대 의견을 피력한 일부 지역주민들이 원천 봉쇄를 하며 아예 이사회 자체가 열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날 안건에는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 시기와 기간, 보상 방안 등이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에 따르면 비상임이사 7명은 이날 이사회 개최시간인 오후 3시가 임박해 한수원 경주 본사를 찾았지만 노조원들에게 막혔다. 노조원들은 본사 출입문을 봉쇄하고 1층 로비와 회의실까지 점거했다. 주민들 역시 원전 건설 중단을 막기 위해 오전 8시반부터 전세버스 9대에 나눠타고 한수원 앞에 도착해 시위를 이어갔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를 두고 일제히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원전 산업 생태계를 걱정하며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산업 생태계는 다 망가질 판”이라며 “국내에서 건설하지 않는데 무슨 명분과 역량으로 다른 나라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겠는가”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만약 한국이 원전 철수 결정을 내린다면 글로벌 원전시장은 중국 러시아가 나눠갖게 돼 벌써부터 미국에선 ‘원전 안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미국의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은 탈원전을 향한 첫 걸음일 뿐”이라며 노조의 반발 등에 대해 “정부의 탈원칙 마저 무산시키려는 원자력 업계와 일부 전문가들의 집요한 ‘흔들기’를 반영한다”고 비판했다.

▲ 동아일보 사설(위)과 조선일보 사설(아래) 갈무리.
▲ 동아일보 사설(위)과 조선일보 사설(아래)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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