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국장회의서 국회의원 동향 파악해 접촉, 걷기대회, 박람회 등 행사에 보도국장, 총국장 모두 참가. 경북에 32건 행사 다 참가했다. 포항·안동(KBS총)국장도 참가. 6번 만난 의원도 있다. 4월 중순 12명 의원 간담회 참석해 수신료 당위성 이야기했고 지원도 약속했다. ‘지사님이 의원님들 꼭 수신료 찬성해주시라고 말씀하셨다’고 발언(하기도.) 모 의원은 자신이 총대 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2011년 6월15일 KBS 수신료 대책 화상회의 中 강성호 KBS 대구방송총국장 보고 내용)

2011년 6월 김인규 전 KBS 사장은 다시 한 번 KBS 수신료 1000원 인상안(2500원에서 3500원으로 인상)에 집중했다. KBS 지역총국장을 통해 수신료 관련 지역 여론을 띄우고자 했고 지역총국장도 꼼꼼하게 보고하며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 김인규 전 KBS 사장(왼쪽)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진=미디어오늘
▲ 김인규 전 KBS 사장(왼쪽)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진=미디어오늘
“방상훈에게 미디어렙 밀어주겠다고 말할 것”

먼저 5월30일에 열린 수신료 대책 회의를 살펴보자. 김 전 사장이 “상임위 일정 확정된 것이냐”고 묻자 정지환 대외정책실장(그는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KBS 보도국장이었다. KBS 기자들을 그를 최순실 보도참사 책임자로 꼽는다. 현재는 KBS 대전총국장이다)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아직 확정이 안 됐다. 1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법안소위에 수신료 안 포함. 22일 문방위 전체회의. 29일, 30일 본회의. 이경재·조윤선(당시 문방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 동심 한마당 참여. (이에 김 전 사장은 ”취재해주지 뭐“라고 말했다) 천정배(당시 민주당 최고위원) 8일 새벽 귀국 예정. 한선교 (한나라당 문방위·현 자유한국당 의원) 간사는 KB 선거 관련 사장님께 엄청 고맙게 생각한다.”

수신료와 관련해 ‘국회 올인’ 전략을 짰던 김 전 사장에게 국회의원들 동향을 보고한 내용이다. 흥미로운 것은 ‘KBS 민주당 도청 논란’을 부른 한선교 의원이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김인규 전 KBS 사장 재임 시절(2009년 11월~2012년 11월) 3년치 임원 회의록에 ‘KB 선거’로 적시된 대목은 ‘KBL(한국농구연맹) 총재 경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의원은 2011년 5월 KBL 총재 경선 입후보 의사를 밝힌 뒤 그해 6월 제7대 한국농구연맹(KBL) 총재로 선출됐다. 임원회의록에 따르면 이 과정에 김 전 사장이 도움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전 사장도 2014년 5월 KBL 총재 경선에 나섰지만 당시 김영기 KBL 고문에게 패배했다.

2011년 4월에 이어 6월에도 김 전 사장은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언론 논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5월30일 수신료 회의에선 다시 한 번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언급됐다. 김 전 사장이 정지환 실장에게 “(수신료 인상에 대한) 조중동 반응은 어때. 방 사장 만나려는데”라고 말하자 정 실장은 “일선 기자들과 EBS 사장 만나는 자리에서 조선 기자가 계속 (KBS 수신료에 대해) 딴지를 걸었다”고 보고했다.

김 전 사장은 “도매금으로 보지 말고 잘 봐”라며 “민주언론시민연합 쪽은 이화섭 (KBS부산)총국장이 만날 거다. 김재윤 간사(민주당 측 국회 문방위 간사)에게 제시할 것 넘어올 것 아니야? (중략) 조중동은 미디어렙에 관심 많은 것 아니야? 내일 방 사장에게 미디어렙을 밀어주겠다고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결과적으로 민주, 선진당, 한나라당, 조중동 그거란 말이야. 김재윤은 (KBS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해주려는 스탠스고 문제는 천정배인데 고대영(2011년 당시 보도본부장·현 KBS 사장)이 만나보고 그러면 소극적 반대 정도로 돌아설 것이다. 소위에 민주당이 전원 참석 안 하도록 해야지. 전재희(문방위원장·한나라당)는 조윤선이를 통해 구워삶아라. 5월31에서 6월1일 영주, 봉화, 안동 소수서원 행사에 조윤선 동행한다니까 취재 필요.”

▲ 한선교 자유한국당 의원. 그는 2011년 6월 불거진 KBS 민주당 도청 의혹을 부른 당사자다. 사진=이치열 기자
▲ 한선교 자유한국당 의원. 그는 2011년 6월 불거진 KBS 민주당 도청 의혹을 부른 당사자다. 사진=이치열 기자
“한선교는 신세 많이 졌기 때문에 쉽다”

다시 하나씩 짚어보면 이날 회의는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구워삶을까에 방점이 찍혔다. 앞서 2011년 4월 회의에서 KBS 간부들은 제주 서귀포가 지역구인 김재윤 간사 설득용으로 “6월29일 제주 지역 디지털화”를 꼽았다. 실제 제주도는 2011년 6월29일 디지털 방송이 시작됐다. 

KBS 간부들에 따르면 당시 김창수 자유선진당 의원은 KBS에 △공정성 담보 광고 축소 △KBS 조직 정비 △난시청 해소 △재난 방송 강화 △통합징수제 폐지 등을 요구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 조건을 갖춰야 수신료 인상에 찬성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광주가 지역구인 장병완 의원(당시 민주당·현 국민의당)에 대해 김 전 사장은 5월30일자 회의에서 “장병완씨에게는 5·18 음악회 때 분명히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광주 지역을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5·18 음악회 DVD 제공”을 꼽기도 했다.

앞서 언급된 미디어렙과 관련해선 2011년 말 종편 개국을 앞두고 자사 미디어렙을 통해 광고 판매 대행을 맡길 수 있는 ‘미디어렙 법안’이 통과되도록 힘쓰겠다는 입장을 전하기 위해 김 전 사장이 방 사장과의 만남을 예고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한 조선일보의 우호적인 기사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 전 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한선교는 신세를 많이 졌기 때문에 김재윤하고 의기투합하면 쉽다. 교수들은 기여 좀 하나?(이에 KBS 한 임원이 ”기고문 잘 써준다. 실리기도 했다“고 말했고 ”올해는 상반기에 3대 학회 다 지원했다“고 덧붙였다) 수신료 올려주면 (지원금) 더 준다고 해. (중략) 낼(6월1일) 이동관(당시 청와대 언론 특보)과 아침 먹는다. (중략) 홍상표(YTN 출신으로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는 생각이 좀 다르다”고 말했다. 청와대 인사들과도 수신료 인상을 두고 조율·논의한 정황으로 보인다.

김 전 사장은 KBS 수신료 인상에 사활을 걸었지만 6월24일 한선교 의원이 ‘녹취록’이라며 민주당 회의 내용을 폭로한 뒤 도청 의혹이 일었고 언론들이 KBS 기자 도청 연루설을 제기하며 KBS는 코너에 몰리게 된다. 도청 의혹은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7월15일자 KBS 임원회의록에는 도청 의혹에 대한 김 전 사장의 곤혹스러움이 잘 드러나 있다. 김 전 사장은 “우리 입장은 (현재) 수사 중인데 (도청 의혹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는 것은)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것”이라며 “(간부들의) 자기 입장 코멘트는 쉽겠지만 잘못 나가면 혼선이다. (중략) 말 잘못하면 회수(하지) 못한다. 진행 중인 수사 보고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방송사에 KBS 입장 잘 전달하라”고 말했다.

민주당 도청 의혹에 연루된 고대영 보도본부장은 “언론이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린 대목이 있다”며 “도청이란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서 증거를 대야 한다. 우리는 안했기 때문에 내놓을 것이 없다. 진상을 밝히고 싶으면 민주당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전 사장은 “기자 사회 취재 얘기인데, 취재 과정에서 큰 문제가 없었다고 얘기하는 상황에선 사측이 뒷받침해줘야 한다”며 “정치부와 보도본부 입장을 지지한다는 자세로 가고 있고 수사 끝나면 회사 입장 정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KBS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KBS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고대영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7월25일자 회의에서도 김 전 사장은 “있지도 않은 도청”이라고 말했고 고대영 본부장은 “경찰이 물증을 대지 못하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압박 중”이라며 “회사 내부에서 취재원 보호에 관련한 얘기들 많다. (중략) 정치부 기자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날 회의에 고 본부장이 “한 가지만 더 얘기하면 언젠가 진실 드러나면 핵탄두다. 회사 불이익과 관련돼 얘기 안 할 뿐”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은 최근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회의록 가운데 ‘핵탄두’ 발언에 대해 KBS는 지난달 25일 “고대영 KBS 보도본부장은 KBS 기자가 도청 의혹에 연루됐을 수 있음을 가정하거나 암시하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사실관계가 확인되지도 않은 개인의 축약된 메모를 일부 내용만 짜깁기하며 왜곡 해석하고 전혀 잘못된 주장을 펼치며 KBS의 명예를 훼손하는 데 대해서는 법적 조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대영 “핵탄두” 발언 진실은?

민주당 도청 의혹과 관련해 2011년 9월27일 MB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 및 홍보기획비서관실 등에서 작성했을 것(당시 홍보수석은 김두우 전 수석)으로 추정되는 문건이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를 통해 공개됐다. 

논란이 되고 있는 문건인 ‘KBS 관련 검토 사항’을 보면 청와대는 KBS 상황에 대해 “국회(민주당 최고회의) 도청 의혹 사건과 이로 인한 수신료 인상 추진 지지부진으로 김인규 사장 리더십 동력 상실과 입지 약화”라고 분석한 뒤 “김 사장은 ‘사장 평가’를 주장하는 노조 눈치보기에 급급”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보도본부·콘텐츠 본부 등 핵심 보직에 좌파 성향 인물들이 포진해 내년(2012년) 선거 정국에서 전면적인 공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김 사장이 자신의 입지와 난국 돌파를 위해 야당과 물밑거래를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이어 대응 방안으로 “수신료 인상안 처리가 지지부진한 상황 지속. 당정청간 입장을 조율해 조속한 시일 내(가급적 정기국회 내) 분명한 매듭”, “도청 의혹 사건은 경찰수사 발표(무혐의 처리)를 통해 부담 경감”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 문건 작성 2개월 후인 2011년 11월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도청 의혹 사건에 연루된 한선교 의원과 장아무개 KBS 기자에 대해 증거불충분에 따른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는 점에서 MB 청와대의 경찰 수사 개입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 이명박 대통령이 2013년 2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디지털방송 전환 유공자 포상에서 김인규 전 KBS 사장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명박 대통령이 2013년 2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디지털방송 전환 유공자 포상에서 김인규 전 KBS 사장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문건에는 “김 사장으로는 KBS 정체성 확립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사장 교체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으로 KBS 정상화 추진”, “다만 김 사장이 버틸 경우 현실적으로 강제적 해임 절차를 추진하는 것이 어려운 바 자진사퇴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추진” 등을 주문한 대목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KBS 사장을 해임할 경우 돌아올 정치적 부담을 고려한 것.

이에 비춰보면 2011년 하반기는 김 전 사장에게 큰 ‘정치적 위기’였다. 이 때문에 청와대 등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KBS 관련 검토 사항’ 문건이 생산된 직후인 2011년 10월21일자 KBS 수신료 대책 회의에 등장하는 김 전 사장 발언은 매우 특기할 만하다.

“MB와의 사장단 대화 때 그러더라. 김재철 왈 ‘큰형님 무너지면 화살 다 MBC로 온다. 어렵게 잡아놨는데….’ 우원길(SBS 사장)이는 아무 말 없고. MB가 나에게 ‘수신료 인상 1000원이 그렇게 어려워’라고 하더라. 2노조(언론노조 KBS본부)에서 신임 투표 제안한 내용의 (19일자) 노보 보여줬더니 심각하게 공감하더라. 이제 있는 내용은 까발려졌다. 어떻게 담느냐가 문제다.”

그러면서 김 전 사장은 “김효재(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가 우리 쪽 시민단체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MB가 ‘무슨 소리야’하고 만류했다”며 “청와대는 아직도 (KBS가 수신료 싸움에서) 이기는 걸로 보고 있더라. 우리는 질 것으로 가정하고 전략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효재 전 수석이 김 전 사장에 대한 우호적 여론 조성을 위해 보수 시민단체를 동원하려 한 정황으로 보인다.  

MB에게 새노조 노보 보여준 김인규

MB와 지상파 3사 사장단의 만남은 당시 보도되지 않은 비공개 회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장단 만남에 앞서 2011년 10월8일 MB 정부를 위태롭게 만든 ‘MB 내곡동 사저 의혹’이 터졌다.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MB가 지상파 3사 사장단과 비공개 회동한 것으로도 추측해볼 수 있다.

아울러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청와대는 KBS 수신료 인상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이에 MB가 김 사장에게 “그렇게 어렵냐”고 물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언론노조 KBS본부는 10월19일자 노보를 통해 제1노조인 KBS노동조합에 “김인규 사장에 대한 공동 신임 투표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도청 의혹 및 편파 방송으로 인한 수신료 현실화 실패 △백선엽·이승만을 앞세운 반역사적 프로그램 △4대강 홍보 등 친정권 보도 △측근 보은 인사 등을 이유로 김 전 사장에 대한 신임 여부를 물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지난달 5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출석했다. MBC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한 고용부는 지난달 28일 김 전 사장 등 MBC 전·현직 임원 6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진=이치열 기자
지난달 5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출석했다. MBC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한 고용부는 지난달 28일 김 전 사장 등 MBC 전·현직 임원 6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진=이치열 기자
김재철 전 MBC 사장 발언(“큰형님 무너지면 화살 다 MBC로 온다. 어렵게 잡아놨는데”)은 코너에 몰린 김인규 전 사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보인다. 김재철 전 사장은 김인규 전 사장을 ‘큰형님’이라고 칭하며 김인규 전 사장이 사내 압박으로 퇴진하게 되면 김재철 자신의 지위도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추측된다.

2011년 10월은 김재철 전 사장의 MBC PD수첩 탄압이 이미 정점에 오른 시점이며 내곡동 의혹 보도가 MBC에서 불방되거나 축소돼 기자·PD들의 불만이 고조되던 무렵이다. MB 청와대 문건은 ‘김인규 교체’ 카드까지 제시했지만 김인규 전 사장은 3년 임기를 채우고 2012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13년 2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을 이유로 김인규 전 사장에게 ‘은탑 산업훈장’을 수여했다. MB 언론 특보 출신인 김 전 사장은 현재 경기대 총장이다.

[김인규 임원회의록으로 본 KBS ①] 수신료 인상 앞두고 김인규는 왜 방상훈을 만났을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