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는 끝났지만 SBS의 ‘문재인-해수부 세월호 인양 거래설’ 보도의 여진은 남아있다. 대선 직전 등장했던 해당 보도를 두고 SBS는 사장까지 나서 적극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여전히 왜 이 같은 보도가 나오게 됐는지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

SBS는 지난 2일 8뉴스 ‘차기정권과 거래? 인양지연 의혹조사’ 리포트에서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을 고의적으로 미뤄오다 차기정부 눈치를 보고 인양작업을 시작했다는 정황을 보도했다. 마치 문재인 후보와 해양수산부가 거래를 해 인양이 늦어진 것처럼 비춰졌다.

SBS는 “의도적으로 늦게 인양한 거 아니냐는 국민적인 의혹이 있었다”는 김창준 선체조사위원장 발언을 전한 직후 논란이 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이 공무원은 “솔직히 말해 이거 (세월호 인양)는 문 후보(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것”이라며 “문 후보가 약속한 해수부 2차관을 만들어주고, 해경도 해수부에 집어넣고”라고 말했다. SBS는 “부처의 자리와 기구를 늘리는 거래를 후보 측에 시도했음을 암시하는 발언”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즉, ‘차기정권 눈치를 본 해수부의 문제점’을 다룬 보도이긴 하지만 ‘고의 인양연기 의혹’이 ‘문재인 후보와 거래 정황’으로 이어지면서 마치 문 후보가 해수부와 거래를 해 인양을 늦췄다는 것처럼 해석될 소지가 컸다.

▲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을 다룬 지난 2일 SBS 8뉴스 보도.
▲ 세월호 인양 고의지연 의혹을 다룬 지난 2일 SBS 8뉴스 보도.

이후 국민의당이 해당 보도를 대선판에 끌어들이면서 부실했던 SBS의 의혹제기는 ‘사실’처럼 둔갑했다. 국민의당은 2일 밤 “선거에 맞춰 세월호 인양 연기를 거래한 문재인 후보, 세월호 영령들에게 고맙다고 적은 의미가 이것이었나”라는 논평을 내고 문 후보가 ‘인양연기를 거래했다’고 단정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어 자유한국당이 기사 삭제 등을 두고 언론자유 침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SBS는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3일 새벽 기사를 삭제한 뒤 삭제 경위에 관해 3일 ‘모닝와이드’에서 해명했고 김성준 보도본부장이 3일 오후 사과문을 올리고 같은날 8뉴스 오프닝에서도 사과했다. 김 본부장은 8뉴스에서 “이 보도는 복잡한 사실관계를 명료하게 분리해서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발제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면서 “이 점에 대해 세월호 가족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사과에는 이례적으로 5분30초의 시간이 할애됐다.

사측도 적극적이었다. 박정훈 사장은 4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담화문을 내고 “세월호 인양과 관련하여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 제목을 달고 함량 미달의 보도가 전파를 타고 말았다”면서 “확인 결과 기사내용의 부실함 뿐 아니라, 이를 방송 전에 확인하고 검증해야 하는 게이트키핑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채 기사 작성의 기본인 당사자들의 사실 확인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사과에도 여전히 ‘왜 그런 기사가 나오게 됐는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 김성준 본부장은 3일 8뉴스에서 “기사 작성과 편집 과정을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 결과”라며 ‘게이트키핑의 부실’을 원인으로 꼽았다.

김성준 본부장은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중간 데스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갖고 뉴스를 편집했을 가능성에 관해 “그게 아니라는 건 분명히 확인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발제 단계에서, 회의에서 나온 얘기들을 보고 판단을 하고 보도국장이 어떻게 보도했으면 좋겠다고 지시를 했는데 기사를 쓰고 데스크를 보고 제작이 되고 제목이 붙는 과정에서 데스킹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 지난 3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 지난 3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이와 관련 세월호참사 유가족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본인들은 기획된 게 아닌데, 기사가 나가고 보니 이런 의도로 읽히게 돼 있었다고 하지만 지상파 간판뉴스에 나가는데 체크가 안 된 실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기사 제목, 인터뷰가 전부 실수라는 건 납득할 수 없다. 분명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후보가 세월호 인양 시기를 두고 해양수산부와 거래를 했다’는 발언은 충격적인 내용일뿐더러 대선 판을 흔들 수 있는 의혹이었다. 이 정도 사안이면 데스크가 해당 발언에 대한 추가취재를 지시하거나, 반론을 받게 하는 게 정상이다. 더욱이 선거 기간 보도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제재 대상이기 때문에 데스킹 과정이 꼼꼼하게 이뤄지는 데다 보도된 시점은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깜깜이’ 기간을 하루 앞둔 때였다.

8일 선거방송심의위 역시 해당 보도에서 후속조치가 취해진 것과는 별개로 제재가 필요하다며 법정제재를 전제로 ‘관계자 의견진술’을 듣기로 결정했다. 선거방송심의위는 해당 보도가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중 객관성 조항과 사실보도 조항에 어긋나는 것으로 판단했다.

안성일 위원(방송기자연합회 추천)은 “문재인 후보 측 발언이 없을 정도로 기사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면서 “법정제재 수준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덕수 위원(국민의당 추천)도 “리포트가 나오게 된 과정, 메인뉴스에서 당당하게 내보낸 이후 왜 사과를 하게 됐는지 등의 뒷 배경을 책임자에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3일 발표된 언론노조 SBS본부의 자체조사결과 확인된 세가지 문제점도 ‘단순 데스킹 부실’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첫째, 리포트의 초안 제목은 “‘인양 고의 지연 의혹’...다음 달 본격조사”로 고의지연의혹에 초점을 맞췄지만 실제 나온 리포트는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로 바뀌었다. 둘째, 초안 때 박근혜 정부 시절 해수부의 인양 지연과 눈치 보기를 지적하는 내용이 있었지만 빠졌다. 셋째, 해당 해수부 공무원이 인양에 관해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내부 이의제기도 있었지만 묵살됐다. 해수부는 4일 해당 공무원이 7급 공무원이며 일주일 동안 인양작업에 파견되는 등 인양작업에 관해 책임 있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SBS가 이번 주부터 진상조사에 돌입하면서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진상조사에는 SBS 기자협회, 언론노조 SBS본부, SBS 시청자위원 중 언론학자 1인, 언론단체 관계자 1인이 포함됐으며 늦어도 이달 중으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데스킹 과정을 중점적으로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조사에서조차 △해당 기사의 데스크를 본 책임자가 누구인지 △어떠한 이유로 기사가 초안과 달라졌는지 △취재원의 신뢰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수용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면 논란은 가라앉기는커녕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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