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년 만남에 언론은 분노했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니 SBS도 뺏겼다. 지금 부산에 KNN밖에 없는데 KNN도 회장이 물러났다. (정권이) 아예 방송을 빼앗는다”는 홍 대표 발언에 SBS와 KNN(부산경남지역 민영방송)은 각각 방송을 통해 홍 대표 언론관을 비판했다.

기자가 눈여겨본 것은 두 사람 만남에 배석했던 인물들이다. 만남이 이뤄졌던 장소는 서울 삼성동 이 전 대통령 사무실. 큰 책상을 두고 한 쪽에는 홍 대표 등 한국당 의원과 관계자들이, 맞은 편에는 이 전 대통령과 측근들이 앉아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전 대통령 측근들은 ‘언론인’ 출신들이었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중앙일보 출신이다. 김 전 수석은 2008년 2월 중앙일보에서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고 2011년 6월 홍보수석에 임명됐다.

▲ 지난 3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년 만남에는 언론인 출신 MB 측근들이 배석했다. 사진=TV조선 유튜브
▲ 지난 3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년 만남에는 언론인 출신 MB 측근들이 배석했다. 사진=TV조선 유튜브
김두우 전 수석은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으로부터 공천 제의를 받고 중앙일보에 사표를 제출했다가 회사 쪽에 사표 반려를 요구해 뒷말을 부른 인물. 그는 최근 논란이 됐던 삼성언론재단 지원을 받고 1996년 해외연수(1기)를 떠나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로서 소위 ‘엘리트 언론인’ 코스를 밟아온 것이다. 그는 부산저축은행 수사 당시 브로커 박태규씨로부터 골프채 등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옆에는 SBS 사장까지 지냈던 하금열 전 대통령실장이 배석했다. 하 전 실장은 동아방송과 KBS·MBC기자를 거쳐 SBS 정치부장·보도본부장·사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10월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는 MB 정부 시절 국정원 언론 담당 IO(Intelligence Officer·국내 정보 담당관)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중적 행태를 부각하라”는 원세훈 원장 방침에 따라, 2009년 노 전 대통령 수사 상황을 적극 보도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당시 하금열 SBS 사장을 접촉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디어오늘에 “SBS에 외부 압력이나 간섭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SBS 출신 하 전 실장 앞에서 “좌파 정권 들어서니까 SBS도 뺏겼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오른편에 배석한 인물은 김효재 전 정무수석이다. 김 전 수석은 1979년부터 2004년까지 25년 간 조선일보에서 기획취재·독자부장, 부국장, 편집국장직무대행,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김 전 수석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중인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 살포로 유죄(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를 받았지만 이 전 대통령 임기 말인 2013년 1월 설 특별사면을 받았다.

▲ 지난 3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년 만남에는 언론인 출신 MB 측근들이 배석했다. 왼쪽부터 SBS 출신 하금열 전 대통령실장, 중앙일보 출신 김두우 전 홍보수석, 조선일보 출신 김효재 전 정무수석, 동아일보 출신 이동관 전 홍보수석. 사진=이치열 기자, 연합뉴스
▲ 지난 3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년 만남에는 언론인 출신 MB 측근들이 배석했다. 왼쪽부터 SBS 출신 하금열 전 대통령실장, 중앙일보 출신 김두우 전 홍보수석, 조선일보 출신 김효재 전 정무수석, 동아일보 출신 이동관 전 홍보수석. 사진=이치열 기자, 연합뉴스
가장 오른쪽에 앉아있던 측근은 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낸 이동관 전 홍보수석. 그는 MB 정부 언론장악의 ‘브레인’으로 꼽힌다. 특히 KBS·MBC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데 주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언론계는 평가한다. 현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야권 추천 이사인 ‘뉴라이트 학자’ 김광동 이사는 기자에게 이 전 수석 추천으로 방문진에 입성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동아일보 기자 시절 ‘뉴라이트 운동’을 기획하기도 했다. 주간동아는 2008년 초 이동관 전 수석 관련 기사를 전하면서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에 주목했다. 주간동아는 “정치부장 재직 시절인 2004년 ‘뉴라이트 운동’을 최초로 기획, 전파해 사회 각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면서 “(이명박) 당선자는 그가 기획한 ‘뉴라이트’ 개념에 적극 동감하고 후원했다는 후문”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이동관 전 수석은 “SBS도 뺏겼다”고 주장하는 홍 대표를 향해 “조중동은 잘 지키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 강효상 한국당 의원(당대표 비서실장)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이날 모인 정치인들과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에게 언론은 정권이 손쉽게 소유할 수 있는 물건에 불과했다. 채수현 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남겼다. “그(하금열)는 홍준표 막말에도 뭐가 좋은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바라건데 나중에라도 홍준표에게 ‘그 말은 좀 심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었다.’ 뭐 이런 깃털 같이 가벼운 말이라도 해줬기를 바랐습니다. SBS가 한없이 가벼워 보였던 서글펐던 순간이었습니다.” 왜 부끄러움은 현업 언론인들의 몫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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