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신년 만남에 언론은 분노했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니 SBS도 뺏겼다. 지금 부산에 KNN밖에 없는데 KNN도 회장이 물러났다. (정권이) 아예 방송을 빼앗는다”는 홍 대표 발언에 SBS와 KNN(부산경남지역 민영방송)은 각각 방송을 통해 홍 대표 언론관을 비판했다.
기자가 눈여겨본 것은 두 사람 만남에 배석했던 인물들이다. 만남이 이뤄졌던 장소는 서울 삼성동 이 전 대통령 사무실. 큰 책상을 두고 한 쪽에는 홍 대표 등 한국당 의원과 관계자들이, 맞은 편에는 이 전 대통령과 측근들이 앉아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전 대통령 측근들은 ‘언론인’ 출신들이었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중앙일보 출신이다. 김 전 수석은 2008년 2월 중앙일보에서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고 2011년 6월 홍보수석에 임명됐다.
그 옆에는 SBS 사장까지 지냈던 하금열 전 대통령실장이 배석했다. 하 전 실장은 동아방송과 KBS·MBC기자를 거쳐 SBS 정치부장·보도본부장·사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10월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는 MB 정부 시절 국정원 언론 담당 IO(Intelligence Officer·국내 정보 담당관)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중적 행태를 부각하라”는 원세훈 원장 방침에 따라, 2009년 노 전 대통령 수사 상황을 적극 보도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당시 하금열 SBS 사장을 접촉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디어오늘에 “SBS에 외부 압력이나 간섭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SBS 출신 하 전 실장 앞에서 “좌파 정권 들어서니까 SBS도 뺏겼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오른편에 배석한 인물은 김효재 전 정무수석이다. 김 전 수석은 1979년부터 2004년까지 25년 간 조선일보에서 기획취재·독자부장, 부국장, 편집국장직무대행,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김 전 수석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중인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 살포로 유죄(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를 받았지만 이 전 대통령 임기 말인 2013년 1월 설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날 이동관 전 수석은 “SBS도 뺏겼다”고 주장하는 홍 대표를 향해 “조중동은 잘 지키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고 맞은편에 앉아있던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 강효상 한국당 의원(당대표 비서실장)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이날 모인 정치인들과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에게 언론은 정권이 손쉽게 소유할 수 있는 물건에 불과했다. 채수현 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남겼다. “그(하금열)는 홍준표 막말에도 뭐가 좋은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바라건데 나중에라도 홍준표에게 ‘그 말은 좀 심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이었다.’ 뭐 이런 깃털 같이 가벼운 말이라도 해줬기를 바랐습니다. SBS가 한없이 가벼워 보였던 서글펐던 순간이었습니다.” 왜 부끄러움은 현업 언론인들의 몫이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