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노동조합(위원장 박준동)이 “임금 인상은 애국”이라는 흥미로운 입장을 내놨다.

올해 초 조선일보 사주 배당은 느는 데 반해 임금 총액은 줄고 있다는 지적과 비정규직 임금을 더 인상해야 한다는 노조 주장이 기사화되면서 회사 안팎으로 노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 가운데 조선일보 노조는 지난 11일 발행한 노보에서 위와 같이 주장했다. 

조선 노조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엔 반대하고 자신들의 임금만 많이 올리려 한다는 비판이 사내외에 있다”며 “오해 때문이다. 본사 기자들이 요구하는 임금 인상은 과도한 정도가 아니다. 격년마다 동결됐던 임금의 정상화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연차가 오르면 임금이 약간씩이라도 오르는 호봉제가 폐지됐기 때문에 임금이 동결되면 해가 지나도 급여에 변동이 없다”며 “숙련도가 늘어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자사 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조선일보 2018년 3월15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18년 3월15일자 사설.
노조 주장과 달리 조선일보는 사설과 칼럼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불편한 시각을 드러내 왔다. 지난 3월15일자 사설에서도 조선일보는 현 정부의 일자리 증가가 더딘 것에 “최저임금 쇼크”라는 표현으로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와 관련 조선 노조는 “기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한다는 오해도 편집권 독립이 안 된 상태에서 사측의 영향력 아래 정해진 논조가 관철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며 “오랜 기간 조직에 적응하다보니 노동자임에도 자발적으로 사측 입장에 동조하는 기자도 일부 있다. 반론을 환영하며 노동 관련 논조에 대한 사내 토론이 활성화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임금은 시장에서 결정되게 놔둬야 한다 △임금을 올리면 물가가 오른다 △임금 인상은 자영업자에게 타격이다 △임금을 올리면 자동화가 빨라져 실업이 생긴다 △임금을 올리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등 임금 인상에 대한 속설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노조는 “일부 기업주들은 해고도 쉽고 임금도 마음대로 줄일 수 있는 자유 시장을 꿈꾸며 ‘노동 유연화’를 주장한다”며 “그런 방식은 초기 자본주의 역사에서 노동자의 삶을 처참하게 망가뜨리며 충분히 경험했다. 기업의 부담을 사회에 전가시킬 뿐이다. 기본 소득이나 복지 제도로 생존을 보장할 때만 ‘노동 유연화’는 사회에 득이 된다”고 밝혔다.  

노조는 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 수익이 나빠진다는 주장에 “자영업자 수익이 급격히 나빠지는 근본 이유는 따로 있다”며 “노동 소득이 부족하고 복지가 빈약해 퇴직자들의 자영업 창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면 자영업자가 임금 인상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 서울 중구에 위치한 조선일보 사옥.
▲ 서울 중구에 위치한 조선일보 사옥.

이밖에도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안 되면 오히려 국가경쟁력이 하락한다. 경쟁력은 사람에서 나오기 때문”, “기업 소득은 늘고 가계 소득은 줄어 양극화가 심각해진 이 시대에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은 노동자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애국하는 길”이라는 등 자사 논조와 다른 주장을 노보에서 펼쳤다.

이 같은 노조의 ‘도발’적인 주장은 박준동 위원장 체제의 노조가 임금 인상 이슈를 사내에 공론화하기 위한 ‘아젠다 세팅’으로 비쳐진다. 박준동 위원장은 15일 통화에서 “최저임금 인상 이슈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자 한다”며 “적어도 노조의 입장은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의 ‘소신’이 조선일보 구성원들의 총의로 모아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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