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명.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 등록한 언론인 숫자다. 국내언론 114개사 728명을 비롯해 해외언론 173개사 503명이 취재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는 역사적인 자리는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모두가 주목했던 감동적인 그날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고 개성공단이 열리고 이산가족들이 수차례 만났다. TV를 켜면 MBC 예능프로그램 ‘느낌표’에서는 “남북 어린이 알아맞히기 경연”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2007년 철도를 북한을 이어 유럽까지 연결하겠다는 게 2007년 박근혜 당시 보수정당 후보의 대선 공약일 정도로 ‘남북교류’와 ‘통일’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나 처음부터 ‘통일정책’을 못마땅해 하던 언론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공안정국’ 조성에 기여한 언론은 때때로 사실과 다른 보도까지 동원하며 ‘남북갈등’을 부추기는 프레임을 통해 햇볕정책을 흔드는 데 주력했다.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는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선일보 기자는 왜 입북을 거부당했을까

남북정상회담 후 이틀이 지난 2000년 6월17일. 6월27일 남북적십자 회담 취재를 위해 16명의 기자들이 현대 관광선 금강호를 타고 방북했다. 장전항에 내리려던 순간, 북한 당국이 조선일보 김인구 기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김 기자만 입북을 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구르던 김 기자는 일주일이 지난 26일이 돼서야 적십자 연락관으로부터 “우리를 자극하는 기사를 많이 쓰는 조선일보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해 듣는다.

김 기자의 소식이 회사에 ‘보고’되자 조선일보는 세 차례나 사설을 내면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7월11일자 “조선일보는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제목의 대형사설이다. 사설 3개 분량을 하나로 채운 이 사설에는 북한 뿐 아니라 국내 조선일보 비판세력에 대한 반박을 담았다.

조선일보는 “평양방송 뿐 아니라 남쪽에서도 조선일보가 남북문제에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는 허황된 목소리가 있다”면서 “조선일보는 신문의 생명인 비판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남쪽 권력에든 북쪽의 권력에든 분명히 할 말은 하고 살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통일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고 밝힌 뒤 “(북한 체제의 통일이 아닌) 평화와 공존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단계를 거쳐 남북합의로 이루어가는 통일”을 지향한다고 덧붙였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북한을 비판했기 때문에 탄압을 받는 것’처럼 프레임을 짜고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재를 거부한 북한의 행태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조선일보의 북한 관련 보도가 문제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북한을 비판해서’가 아니라 왜곡보도를 통해 냉전식 대결구도를 부추기며 ‘반통일’ 논조를 보였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한국 내부의 비판은 주로 이 같은 문제적 보도에 기인한 것이었다.

햇볕정책 국면, 대결 부추기고 평가절하

대표적인 조선일보의 악의적인 보도는 정상회담 직전에 벌어졌다. 5월31일 사설 ‘태극기 내리면 나라도 내리는 것’에서 조선일보는 정상회담을 열흘 앞둔 상황에서 평양학생소년예술단 방문 직전 한 학교에서 벽에 걸어놓은 태극기를 내린 사실을 언급하며 “우리가 북한에 무엇을 잘못했길래 나라의 표상인 태극기까지 떼어내야 하는가”라며 굴욕적인 행동을 한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사설이 나온 직후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서울초청공연실행위원회는 “남북화해 재 뿌리는 조선일보 저의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반발했다. 양측이 서로 자국 국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태극기를 내린 것인데 조선일보는 이 같은 맥락은 알아보지도 않은 채 왜곡을 했던 것이다.

앞서 2000년 4월,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된 시점에서 보수언론은 ‘평가절하’에 급급했다. 정부는 “냉전구조 해체와 한반도 평화정착, 상호불가침 등을 골자로 한 한반도 평화헌장 채택”을 강조했지만 보수언론은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4월12일 동아일보가 ‘경제협력’에만 방점을 찍고 이를 평가하는 사설을 썼다.

정상회담 직전인 13일 조선일보는 사설 “남북은 냉엄한 비즈니스다”를 통해 정상회담을 축제처럼 여기는 정서를 언급하며 “나사가 풀리듯 최면에 걸리듯 당장 천지개벽이라도 있을 듯이 제 정신을 잃다가는 좋은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정작 회담이 진행 중이던 때는 6.15 공동선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를 전후해서는 문제적 프레임을 일관되게 이어갔다.

정상회담을 전후해 긍정적인 국민적 평가가 이어지자 역사적인 의의가 있음을 부정하는 대신 ‘정략적 판단’ 프레임이 두각을 나타냈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은 4월22일 칼럼에서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는 대통령, 그것은 한국의 정치지도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업적이다. 그러기에 그는 이번 회담에 모든 걸 걸 것”이라며 “그가 무리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우리는 큰 불행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는 프레임인데 김 전 대통령이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때부터 “적극적 평화지향” 통일정책을 강조해온 점을 감안하면 악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7월15일 동아일보가 사설을 통해 “여당은 남북회담의 성과를 재집권의 호재 정도로 스스로 격하시키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면서 햇볕정책을 재집권을 위한 정략적 선택으로 평가절하한 것도 같은 프레임이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저서 ‘신문읽기의 혁명’에서 “조선일보는 민족적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북 대결의식을 일관되게 부추기고 있다”면서 “자신들의 잘못된 편집방향을 사설과 보도를 통해 여론화해나가는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반복되는 ‘색깔론’과 ‘퍼주기’ 프레임

이후 평화 국면이 자리 잡으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및 주한미군 철수 여론이 높아지자 보수신문들은 오랜 기간 즐겨 쓴 ‘색깔론’ 프레임을 쓰면서 한발 더 나아가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북한이 이익을 본다는 점을 전제한 ‘남남갈등’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2000년 7월13일 조선일보는 국회 대정부 질문 내용을 인용해 “정상회담 후 국론분열”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1면 톱에 실었고 2001년 8월22일 조선일보 1면 톱기사는 “2001년 8월21일 김포공항의 남남갈등”이었다.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 남쪽 대표단의 이념을 문제 삼는 내용이다.

교전이 일어날 때마다 햇볕정책은 무용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2007년 7월30일 조선일보는 “햇볕정책의 최대 수혜자인 북한은 금강산관광의 대가로 받은 거액의 현금을 비롯해 식량과 비료 등의 엄청난 지원을 받았지만 그 보답이 포탄이요. 아까운 우리측 젊은 장병들의 목숨을 앗아간 만행이요 행패인가”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 역시 “(햇볕정책이) 김정일 정권이 국가 운영에 써야할 돈을 미사일 개발과 같은 곳에 돌려 쓸 수 있도록 여지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남북교류와 평화유지에 따른 여러 측면의 이익을 계산하지 않는 ‘퍼주기’ 프레임은 현재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 같은 프레임의 흐름은 참여정부 때 2차 남북정상회담을 주최하자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조선일보는 2007년 8월9일 “노무현·김정일 무엇을 위해 만나나” 11일 “이제 북한의 남한 선거 개입은 당연지사인가” 사설을 통해 정상회담 자체를 정략적 목적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조선일보는 9일 시론을 통해 “김정일엔 꽃놀이패, 노정부엔 마지막 도박판”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2차 정상회담 국면인 2007년 이봉조 통일연구원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속됐던 적대적 관계를 화해협력의 관계로 바꾸는 일이 쉬우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느냐”라며 “그동안 교전도 있었고, (북한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일도 있었지만 (조중동의 지면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 2007년 남북정상회담 추진 당시 조선일보 사설
▲ 2007년 남북정상회담 추진 당시 조선일보 사설


위기 때마다 불렀던 그 이름, ‘북한’

오히려 중요 국면 때마다 북한을 정략적으로 활용해온 건 다름 아닌 이들 언론이었다. 노태우 정부가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취하고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구도가 희석되기 시작했지만 이들 언론은 위기 때마다 끊임없이 북한을 호출해 ‘공안정국’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이다.

햇볕정책이 한창이던 2002년 12월13일 예멘 인근 공해상에서 미국이 미사일을 실은 북한 배를 나포한다. 다음날 조중동 모두 사설을 통해 북한을 비판하고 나섰다. “미사일 개발하라고 햇볕 준 꼴”(조선) “북한 또 한번 국제사회 배신했다”(동아) “북한 미사일 수출할 땐가”(중앙) 등이다. 그러나 당시 예맨정부가 “합법적 미사일 수입”이라며 항의했고 미국은 잘못을 인정하면서 조중동의 보도가 군색해진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결이 펼쳐지던 16대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앞서 김영삼 정부 초기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은 판문점의 남북 실무회담 북쪽대표의 ‘서울불바다’ 발언을 거두절미하게 도보하면서 김영삼 정권 초기 민주화 요구국면을 신공안정국으로 전환한 바 있다. 노태우 정권 출범 이듬해인 1989년 5.18 청문회 등 5공 청산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조선일보는 문익환 목사 방북을 보도하며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문씨 ‘돌아가고 싶지 않다’”로 악의적으로 편집해 ‘공안정국’을 조성한 바 있다.

1995년 전두환 노태우씨 구속 국면에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은 망명한 이철수 대위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장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보도했다. 물론, 일개 대위가 북한의 전쟁계획을 알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고, 그가 말한 작전계획은 1980년대 망명한 북한군이 얘기한 것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20년째 반복되는 “북한 곧 붕괴된다” 호들갑

“김정일 본처 서방탈출.” 1996년 2월13일 조선일보의 특종 보도다. 지도자의 본처가 떠날 정도로 북한이 위기라는 점이 드러나는 기사였다. 당시 조선일보는 TV광고에서도 이 기사를 ‘특종’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서방으로 탈출했다는 성혜림씨는 모스크바에 머물면서 북한 측 보호를 받고 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오보’라는 점이 밝혀졌다. 그의 언니만 3국으로 망명한 사실이 와전된 것이다. 물론, 성씨가 본처라고 볼만한 충분한 증거도 없었다.

이 대형오보는 1994년 김일성 사후부터 꾸준히 제기되는 ‘북한붕괴론’을 부추기고 있다. 북한의 체제가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햇볕정책 시작 때부터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이 북한이 무기를 개발할 때마다 강조해온 ‘대북제재론’ 역시 북한을 제재하기만 하면 스스로 붕괴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 1996년 조선일보 '김정일 본처 서방탈출'보도.
▲ 1996년 조선일보 '김정일 본처 서방탈출'보도.

이 같은 보도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 조선일보는 북한붕괴론을 언급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흔들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북은 끊임없이 도발하고 흔들어 댈 것이며 그럴 때마다 우리 사회 내부가 요동칠 것이고 내부엔 그걸 기다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면서 “대통령의 이번 다짐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말로만 그칠 경우 오히려 무기력증을 더 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신문의 보도는 햇볕정책이 북에 핵무기가 됐다는 인과관계를 짜 맞추던 것과는 달리 지난 9년 간 일관된 제제와 규탄이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 데 대한 평가는 찾아볼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북한이 문제인 건 맞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대화는 필요하다는 점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페이스북에 최근 언론보도와 관련 “기사에서 ‘핵을 가지려는 북한과 대화하겠다니 순진한 정부’라는 표현을 봤다”면서 “핵을 가지려고 하니,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9년처럼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는데. 규탄 성명 발표하고, 매번 역대최강의 제재라는 말만 하고 있으란 말인가? 지난 9년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구경만 했을 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베를린 구상’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소식을 1면 톱에 배치한 조선일보의 편집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 통일정책을 평가절하하는 세 번째 시도의 ‘전초전’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햇볕정책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이들 신문에 종편까지 가세해 또 다시 같은 공세를 펼 것이다. 오랜 기간 남북 대결국면이 이어지고 북한이 핵개발을 하면서 ‘강경’여론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유시민 작가는 2011년 tvN ‘끝장토론’에 출연해 햇볕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이렇게 답했다. “대립이 있는 곳에 갈등을 조장하고 싸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반면 화합과 평화를 가져오는 건 아주 노력하는 정치인만 할 수 있다. 김정일 욕하고 핵개발 비난하는 걸 누가 못하나. 보수진영의 정책은 너무나 쉽고 진보진영이 하는 건 어려운 길이다.”

※참고문헌

신문읽기의혁명
조선일보대해부5
동아일보대해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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