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지율 60% 수준이 야권으로 돌아갔지만 여권으로 간 40% 가운데 30% 이상이 홍 지사에게로 돌아갔다. 이에 따라 홍 지사는 처음으로 5위권에 진입했다.

홍 지사는 지난 15일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라는 특별대담에서 사실상 대선출마를 공식화하고 정치, 경제, 복지, 남북 관계 등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문제는 1시간 남짓한 강연에서 사실과 다른 발언도 나왔다는 점이다. 홍 지사의 발언을 팩트체크 해봤다. 

▲ 홍준표 경남지사가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 미래재단 초청 특별대담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행사에 참석,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홍준표 경남지사가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 미래재단 초청 특별대담 '천하대란 어떻게 풀 것인가' 행사에 참석,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1. “망한 그리스로 가자는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공 일자리 창출 정책에 대한 홍 지사의 발언이다. 홍 지사는 “(그리스는) 공무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네 사람이 하도록 늘여 놨다”고 말했다. 비효율적인 공공기관이 그리스 위기로 이어진 것으로 들릴 수 있다. 

해당 발언이 아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절반의 진실도 되지 못한다. 그리스가 한국에 비해 공공부문 일자리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공공부문 일자리는 7.6%인데 그리스는 16% 수준이다. 하지만 OECD 평균은 21.3%다. 두 나라 모두 평균에 못 미친다. 

그리스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특별히 더 비효율적일까. 공공부문 노동자만 떼어볼 수는 없지만 그리스인 연평균 노동시간은 2037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4위다. 쓸데없이 오래 일하니까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가능하겠지만 한국은 해당 지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리스 경제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유로화폐 통합으로 꼽힌다. 잘사는 북유럽과 못사는 남유럽이 같은 화폐를 쓰게 되면서 그리스도 돈을 빌릴 때 독일 수준의 낮은 이자로 빌리는 게 가능해졌다. 그 결과 많은 돈이 그리스로 들어왔고 부동산 버블 등이 위험수준으로 가게 된 것. 

나아가 그리스는 관광업 외에는 두드러지는 산업이 없다. 제조업 기반도 부실하다. 그리스가 경제위기 이전에도 만성적인 실업문제를 안고 있었던 이유다. 여기에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오면서 관광객이 감소한 것 역시 경제위기의 큰 원인이 됐다. 

▲ 지난해 9월 그리스 시리자당의 1위가 확실시되자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지난해 9월 그리스 시리자당의 1위가 확실시되자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2. “세계적으로 좌파 몰락시대다. 유럽좌파 몰락했죠. 남미좌파 몰락했다. 세계가 전부 좌파만 몰락하고”

홍 지사는 이제 세계는 ‘스트롱맨’의 시대라고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미국의 트럼프, 일본의 아베,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을 예로 들었다. 한국을 둘러싼 나라에서 극우 국수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건 맞다. 하지만 좌파가 몰락했다는 발언은 틀렸다.

당장 홍 지사가 해당 발언을 한 15일(현지시간) 실시된 네덜란드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가장 많은 의석(33석)을 차지하며 극우 정당 저지에 성공했다. 네덜란드 총선은 그간 유럽에서 극우 정당 열풍을 저지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관측됐다. 극우 정당은 20석을 얻는 데 그쳤다.

약진한 것은 오히려 ‘녹색좌파당’이었다. 녹색좌파당은 현재 의석인 4석보다 10석을 늘린 14석을 차지했다. 언론은 이를 두고 “사실상 이번 총선의 최대 승자”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녹색좌파당은 1989년 창당 이래 처음으로 집권 연정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모인 사회당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고 오스트리아는 지난 12월 대선에서 녹색당 대표 출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리스 역시 기존 좌파정당이 세를 잃고 극좌파로 분류되는 시리자가 급부상하고 있다. 

▲ 베트남 수도 하노이 인근의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현지 노동자들과 경비원이 충돌했다. 사진=포커스뉴스
▲ 베트남 수도 하노이 인근의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현지 노동자들과 경비원이 충돌했다. 사진=포커스뉴스
3. “투자한들 노조가 생기고 악성노조들이 욕질을 하고 그러는 판인데 (기업이) 국내투자를 할 필요가 있나. 해외투자를 확대한다”

홍 지사는 ‘경제대란’을 풀 해법으로 기업에 대한 규제 등을 풀겠다고 했다. 지금은 강성노조와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국내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홍 지사는 “삼성전자 같은 경우 베트남 공장에 인원이 3만 명”이라고 예를 들었다.

기업들의 해외진출을 노조 탓으로 돌렸지만 정작 해외로 이전한 공장 사례로는 노조가 없는 삼성전자를 예로 든 것이다. 홍 지사의 주장은 틀렸지만 사례는 맞다. 노조가 없는 기업일수록 해외진출이 빨랐다. 기업들이 좋아하는 나라는 ‘더 싼’ 나라로 가게 해주는 나라다. 

해외를 봐도 마찬가지다. 아예 국내 생산공장 자체를 없애버리고 해외 위탁 체계를 갖춘 미국의 애플이나 IBM을 보자. 이들 기업에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노조가 없었다. 노동운동이 약화된 1970년대부터 전자산업이 부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홍 지사 주장과는 반대로 노조가 많아야 오히려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하고 고용을 유지한다. 친재벌 언론이 비판하는 현대차가 대표적이다. 현대차 노조는 그간 해외공장 증설을 위한 반대 투쟁을 지속해왔고 여전히 해외공장 물량을 두고 노사가 다툰다. 

▲ 軍, 확성기 주변에 토우미사일·비호무기·K-9 배치.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민중의소리
▲ 軍, 확성기 주변에 토우미사일·비호무기·K-9 배치.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민중의소리
4. “북이 가지고 있는 만큼 우리도 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핵을 가진 나라끼리는 절대 전쟁을 할 수 없다. 같이 다 망하니까. 공포의 균형”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먼저 한미동맹이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핵 우산을 제공받고 있는데 핵개발을 시도하면 핵우산은 깨지고 한미동맹도 깨진다.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이기도 한데 이에 저촉되는 일을 할 경우 각종 무역 및 경제제재를 받게 될 수 있다. 이는 수출 의존형인 한국 경제에 치명적일 것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핵무기 연료인 우라늄도 없다. 

나아가 정치인들의 이 같은 발언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발언권이 센 정치인들이 핵무장을 계속 언급하게 되면 핵 개발 의지를 가진 나라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에서는 그런 나라를 ‘핵 의심 국가’로 분류한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지난해 9월 취임 100일을 맞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술핵배치, 핵무장론까지 있다고 (미 의회에) 소개했다"면서 북핵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선순위로 이 문제 다뤄달라는 취지로 말씀드렸지만 펄쩍 뛴다”고 말한 바 있다. 

대선주자라는 무게 생각하면 넘어갈 수 없어 

이런 지적에 대해 홍 지사는 별 거 아닌 것으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적절한 사례를 들지 못해 오해가 불거진 것일 수도 있고 시간이 얼마 없다보니 맥락을 생략하고 정책을 설명한 것이라며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대선주자라는 자리의 무게가 무겁다. 

언론은 대선주자의 정책이 발표되자마자 보도하기에 바쁘다. 팩트를 체크할 시간은 부족하다. 잘못된 팩트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미국 대선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CNN 등은 TV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 팩트를 체크해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홍 지사에게도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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