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이석우 중앙일보 디지털총괄이 지난 9월 사표를 냈다. 2015년 12월 중앙일보가 디지털기획실장으로 영입했던 그는 사내 디지털 퍼스트의 지휘자였다. 경영진은 개발자 수십여 명을 채용했고, 이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점령군’으로 불렸다. 이석우 총괄의 등장 이후 기자보다 개발자가 우대받는 사내 분위기가 형성되며 종이신문 기자들은 반발해왔다.

장면2. 주간동아가 9월4일자 1104호부터 1106호까지 3주 연속으로 남성아이돌그룹 ‘워너원’의 멤버를 표지모델로 썼다. 커버스토리는 “‘입덕’하고픈 워너원은 누구”였다. 워너원 팬들이 주간동아를 경쟁적으로 사들였다. 주간조선도 8월14일 2470호 표지모델로 워너원의 인기멤버 강다니엘을 담았다. 2470호는 일시품절 사태를 겪었다고 한다.

단언컨대 ‘디지털 퍼스트’는 한국 언론계에서 가장 의미 없는 구호다. 디지털 유료화 전략보다 잡지 모델을 아이돌로 꾸미는 것이 수익으로 연결되고 디지털 퍼스트의 성과란 것도 주로 조회 수나 페이스북 ‘좋아요’로 평가받는 현실에서 디지털 퍼스트는 “더욱 더 빨리, 자극적으로”란 구호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게 회의에 젖어있어서는 공멸이 뻔하다. 멀리서 예를 찾을 것도 없다. 최근에 있었던 240번 버스 사건이 일례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한 커뮤니티’, ‘익명의 누리꾼’으로 인용되며 구설이 주요 뉴스로 둔갑했다. 240번 운전기사의 삶이 매도되고 나서야 사실은 드러나고 미디어는 반성 없이 또 다른 구설을 뉴스로 생산하고 확산시킨다.

정작 중요한 뉴스는 눈앞에서 사라지기 일쑤다. 그래서 대중은 본능적으로 신뢰할 만한 언론을 찾는다. 지금 한국에선 JTBC가 ‘뉴스의 종착점’으로서 그 지위를 누리고 있다. JTBC를 제외한 대다수 주류 방송사와 신문사의 뉴스 신뢰도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JTBC와 손석희의 높은 신뢰도와 영향력 쏠림현상은 역설적으로 언론 전반의 위기를 반증한다. (관련기사=JTBC, 영향력·신뢰도·열독률 모두 1위)

그래서 뉴욕타임스 미래전략TF 기자 7명이 2017년 1월 공개한 ‘2020그룹 보고서-독보적인 저널리즘’을 다시 들춰본다. 지금 여기서 다시 뉴욕타임스 혁신안을 꺼내 ‘사골’처럼 우려먹는 이유는 뉴욕타임스 혁신모델이 성서도 아니고 예언서도 아니지만 가장 치열하게 혁신을 고민하는 그들의 자기반성이 한국 언론인들의 고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 뉴욕타임스 2020그룹 보고서에 사용된 영상 갈무리. 언제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고, 찾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뉴욕타임스 2020그룹 보고서에 사용된 영상 갈무리. 언제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고, 찾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들의 기대와 칭찬이다”

해당 보고서는 2014년 ‘혁신’, 2015년 ‘우리가 가야 할 길’에 이어 뉴욕타임스의 세 번째 미래보고서였다. 이미 두 번째 보고서에서 2020년까지 디지털 수익을 8억 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가 등장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1851년 탄생한 전통의 종이신문사는 2016년 디지털부분에서 5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뉴욕타임스는 구독자 중심의 비즈니스를 추구한다. 그리고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가치를 가진 디지털 기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에선 선언적 구호에 그치는 내용이다. 뉴욕타임스는 2011년 유료 구독 모델을 선보이고 6년 만에 150만 명의 유료구독을 이끌어냈다. 이는 종이 신문 구독자 100만 명을 넘어서는 지표였다. 그런데도 보고서에 담긴 뉘앙스는 여전히 혁신하지 못해 안달 난 모습이었다. 여기 담긴 구호 중 인상 깊은 대목을 꼽아봤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뉴욕타임스에 시간과 돈을 할애하는 독자들이 거는 기대와 칭찬이다.”

“우리의 목표는 독창적이며, 시간을 투자하고, 발품을 팔아 취재했으며, 전문성이 확보된 디지털 저널리즘 모델이 실현 가능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기사 조회 수는 기사의 성과를 측정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곧 저널리즘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들이 말하는 독자들의 ‘기대’와 ‘칭찬’은 눈에 보이는 지표가 아니다. 전문성이 담긴 기사 또한 어뷰징과 달리 곧바로 수익과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뉴욕타임스는 단기적 성과 대신 당장 눈에 안 보이는 장기적 성과를 택했다. 실패할 수도 있다. 여기선 인내와 인내,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한국의 대다수 뉴스룸 간부와 언론사 경영진이 갖지 못한 미덕이다.

1300여명이 일하는 뉴욕타임스는 하루 평균 200여개 기사를 출고하는데, 이들은 뻔한 기사를 보기 위해 구독료를 내는 독자는 없다며 독자가 외면하는 콘텐츠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경쟁사와 차이가 미미한 기사
△시급하지 않은 기획 기사와 칼럼
△명쾌하지 못하고 난해하며 원론적인 글
△사진·동영상·표로 대체해야 할 긴 글로 구성된 기사

미국이라고, 영국이라고 볼품없는 저널리즘과 독보적인 저널리즘의 기준이 한국과 다를 리 없다.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언론사로 거듭나기 위해 △보도의 혁신 △구성원의 혁신 △업무방식의 혁신을 요구하는데, 특히 디지털 시대에 저널리즘이 처한 현실을 지적한 아래 대목은 한국 언론에 주는 시사점이 많다.

“인터넷 중심의 저널리즘은 진부함을 용인하지 않는다. 기자들이 실수를 하거나, 기사의 뉘앙스가 잘못되고 예리함을 놓쳤을 때,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곧바로 신랄한 비판과 지적을 받는 것이 지금의 언론 생태계다. 평범하고 획일화된 정보를 공짜로 제공해 주는 매체는 이미 차고 넘친다. 역설적으로 높은 전문성에 대한 독자들의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반영해 스스로를 냉정하게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위 대목에서 진보언론에 대한 독자들의 비판흐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적극적 뉴스수용자들의 실시간 피드백은 세계적 현상이며 이들이 바라는 것은 팬덤형 기사가 아닌, ‘내가 지지하는 사람 또는 집단에 대한, 내가 접할 수 없는 수준 높은 정보와 비평’이다. 특정 정치집단의 지지자들을 만족시키는 뉴스만으로는 독보적인 저널리즘, 또는 뉴스의 종착지가 될 수 없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의 지상 목표도 상징적이다.

“뉴욕타임스의 목표는 경쟁사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콘텐츠를 제공해서 이에 매혹된 수백만 명의 독자들이 모여드는 뉴스의 종착지가 되는 것이다.”

▲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JTBC
▲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JTBC
JTBC “우리는 지상파도 아니고 종편도 아니고 단지 JTBC여야 한다”

뉴스의 종착지가 되기 위해선 뉴스룸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며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뉴욕타임스에서만 볼 수 있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선보여야 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0년간 지면만을 위한 조직 구조와 업무 프로세스를 고수해 왔다고 자평하며 구성원들이 고민해야 할 3가지 미래 비전을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

△ 저널리즘 : 어떤 기사를 취재할 것이며 그 방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경쟁사와 차별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 독자 : 각 부서의 타깃 독자층은 누구인가? 독자들이 마치 습관처럼 뉴욕타임스의 콘텐츠를 찾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각 부서의 목표는 무엇이며 목표 달성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운영 : 각 부서별로 필요한 핵심 기술은 뭘까? 현장 기자와 콘텐츠 제작자, 팀장과 편집자의 업무는 어떻게 분담해야 할까?

뉴욕타임스 2020그룹 보고서는 사원 2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는데 많은 구성원들이 800자 분량의 기사를 너무 많이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영역을 다 커버해서 뉴스로 제작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데 취재력을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선택과 집중이다.

지난 5월31일 뉴욕타임스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바이아웃(명예퇴직)을 제안했다. 바이아웃 제의를 받은 109명은 모두 종이신문 체제의 상징과 같은 편집 인력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계속해서 취재·디지털 분야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편집 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취재기자 100명을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언론사 가운데 신뢰도·영향력·열독률 1위 JTBC의 상황은 어떨까.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2016년 12월 한 달간 ‘뉴스룸’의 온라인 시청자수는 자사 홈페이지+포털사이트+유튜브+팟캐스트 합계 2964만 명으로 나타났다. JTBC ‘뉴스룸’은 모바일을 통한 시청 비중이 동시간대 지상파 메인뉴스보다 2배 이상 높을 정도로 디지털 공략에 성공했다. 

손 사장은 “디지털(전략)의 방향은 다양한 채널이용자들에게 JTBC 뉴스만의 정체성을 잘 찾아가는 것, 디지털을 통해 더 JTBC다운,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손석희 “디지털의 목표는 저널리즘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

JTBC는 “JTBC만의 문법을 만들겠다”며 최근 리포트혁신 연구팀을 출범시켰다. 메인뉴스 시간을 길게 잡고 선택과 집중으로 특정 이슈를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아젠다 키핑 전략이 오늘날 JTBC만의 문법인데 이를 심화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은 평소 “우리는 지상파도 아니고 종편도 아니고 단지 JTBC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JTBC의 방향은 뉴욕타임스의 고민들과 맞닿아있다. 손 사장은 최근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뉴미디어가 넘쳐나고 1인 미디어까지 성황이어서 정보를 얻는 통로가 다양하다 보니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그럼에도 전통적 저널리즘의 정신을 폄하할 수는 없다. 그건 본질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걸 지켜가다 보면 언론의 신뢰도 점차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우리는 2020년에 어떠한 뉴스룸을 기획하고 있나. 우리의 독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뉴스룸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있나. ‘2020년까지 회사가 망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자조 섞인 전망을 대신하기 위해 갈 길이 멀다.

참조=<독보적인 저널리즘> 뉴욕타임스 2020그룹 보고서, 강진규 옮김, 스리체어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