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진의 이탈이 시작됐다. 공영방송 ‘언론 적폐’ 청산도 본격화됐다. 유의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가 사퇴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는 보궐이사를 현 정부 몫으로 임명할 수 있게 됐다. 조만간 이뤄질 방통위 감사가 남아있는 이사들의 거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건이다.

방통위는 유의선 이사 사퇴에 따른 보궐이사 선임을 조만간 시작할 계획이다. 방문진 관계자는 “11일 유의선 이사의 사직서를 받은 뒤 방통위에 보궐이사 선임을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보궐이사를 선임할 때는 공모절차를 거치지 않고 방통위 내 의결로 간소화한 전례를 감안하면 임명 시기는 빨라질 수 있다.

비슷한 시기 방통위의 공영방송 감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7일 전체회의에서 “방통위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필요하면 감사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방통위 관계자는 “감사는 조만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방통위 의결로 정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감사 시작 시기를 공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왼쪽부터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김장겸 MBC 사장.
▲ 왼쪽부터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김장겸 MBC 사장.

감사는 방통위의 직접감사와 감사원을 통한 감사 등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감사원의 감사는 절차가 오래 걸리기 때문에 방통위 직접 감사 가능성이 높다. 방통위가 방문진의 주무부처라는 법적 판단이 나와 있는 만큼 감사를 진행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방통위는 감사를 통해 MBC 파업사태로 인한 방송 송출중단 문제, 대량으로 벌어진 부당전보 및 징계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미 제출된 MBC경영평가보고서를 두고 직무유기 지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1일 성명에서 “경영평가보고서는 방문진법에 나와 있는 방문진의 법적 의무사항”이라며 “경영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것은 방문진 고유 업무수행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통위 감사가 시작되면 구여권 이사들의 사퇴행렬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방문진 김광동 이사는 경영평가보고서에 지속적인 수정을 요구하며 기한을 넘긴 책임자로 거론되고 있다. 방문진을 총괄하는 고영주 이사장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영주 이사장과 김원배 이사는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김원배 이사의 자녀는 2016년 방송진흥사업에 공모해 당선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방통위 감사와 새 이사 선임 국면이 맞물릴 경우 조속한 공영방송 정상화가 가능하다. 방문진의 경우 6:3 구도에서 5:4 구도로 바뀌는 상황에서 구 여권 이사가 1명이라도 더 사퇴할 경우 현 정부여당이 다수가 돼 사장 해임안을 의결할 수 있다. MBC의 빠른 정상화를 바라는 쪽에서는 금주 내로 한 명의 방문진 이사가 더 사퇴하고 방통위가 보궐이사 두 명을 뽑아 21일로 예정된 이사회에서 김장겸 사장 해임안을 가결시키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언론노조 MBC본부는 남아있는 구여권 방문진 이사 5명을 향해 “자진 사퇴하라. 유의선 이사처럼 그나마 최소한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명예 퇴진뿐이다”라고 경고했다.

▲ 지난 7일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임시이사회에 들어가는 경영진을 기다리며 김장겸 사장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 지난 7일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임시이사회에 들어가는 경영진을 기다리며 김장겸 사장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KBS에서는 유의선 이사와 마찬가지로 학자 출신인 강규형 이사의 사퇴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은 12일 강 이사가 교수로 일하는 명지대학교로 찾아가 학생들과 함께 퇴진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7일 논평을 내고 “적폐 인사들이 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며 방문진 구여권 이사들의 퇴진을 요구한 뒤 “초유의 파업을 맞아 KBS 사장조차 출석시키지 못하는 KBS 이사회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며 KBS 이사회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공영방송 장악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연달아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다. 지난 5월 조준희 YTN 사장이 사퇴하고 지난달 우종범 EBS 사장이 사퇴한 가운데 YTN해직사태의 장본인으로 꼽히는 YTN사장 출신의 배석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도 지난 1일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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