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과 대학 등록금, 전 재산을 유망주라 믿었던 주식에 밀어넣었지만, 회사는 주가조작과 횡령 사건에 휩싸이고 유령이 되어 사라졌다. 5000여명에 달하는 ‘개미투자자’들은 이익 배당 대신 이혼과 자살, 대학 중퇴라는 시련만 떠안았다. 

피해자들은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최근 돈은 엉뚱한 사람이 가져갔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30일 방송된 SBS ‘그것이알고싶다’에서는 ‘140억은 누구의 돈인가?-BBK 투자금 진실게임’ 편에서 이 의혹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BBK 사건은 1999년 재미 사업가였던 김경준씨가 한국에 BBK라는 투자자문 회사를 설립해 384억 원에 달하는 돈을 횡령한 사건이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와 연관됐다는 의혹은 무성했지만 이 전 대통령과 당시 한나라당은 적극 부인했다. 

BBK는 1999년 김경준씨가 설립한 회사다. BBK는 회삿돈을 유용하고 보고서를 조작해 등록이 취소됐는데 상장 폐지 직전의 회사를 인수해 옵셔널벤처스라는 이름의 회사로 재탄생한다. 옵셔널벤처스는 주가조작과 횡령으로 약 1000억원 가량으로 추정되는 피해액만 남겼다.

‘그것이알고싶다’ 취재진은 당시 옵셔널벤처스에 투자를 했던 개미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식선물 옵션 귀재’라고 불린 미국 명문대 출신의 유명 펀드매니저인 김경준씨가 회사를 인수했다는 소식에 특히 주가 상승 기대감이 부풀었다. 외국인 투자자가 30%가 넘었다는 소식에 다들 우량회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 지난 30일 방송된 '그것이알고싶다' 방송 화면 갈무리.
▲ 지난 30일 방송된 '그것이알고싶다' 방송 화면 갈무리.

특히 당시 주식 고수들 귀엔 옵셔널벤처스에 ‘이명박’이라는 이름이 함께 들려왔다. 한 투자자는 “(현대건설 사장) 퇴직하고 나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쪽(옵셔널벤처스) 투자했다고, 이쪽에 사업체 하나 만들어가지고 한다고(들었다). BBK가 옵셔널벤처스니까. 똑같다”고 말했다.

2000원 대에서 시작한 옵셔널벤처스의 주식은 8000원 대로 급상승했다. 그러다 이유없이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한 주가는 150원까지 폭락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미 투자금을 회수하고 빠진 뒤였으나 회사는 공시하지 않았다. 옵셔널벤처스 대표였던 김경준씨는 2001년 9월 이미 대표이사직을 사임했고 300억 원 가량을 횡령해 미국으로 이미 출국한 뒤였다. 결국 옵셔널벤처스는 상장폐지됐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2007년 김경준씨 횡령사건이 다시 불거진 건 엉뚱하게 대선 국면을 맞으면서였다.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가 BBK와 연관이 있다며 벌어진 공방이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가 BBK와 연관이 있다는 여러 증거들이 공개됐다. 이장춘 전 대사는 이 후보의 BBK이라고 적힌 명함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것이알고싶다’ 팀이 입수한 한 녹음파일에는 이명박 후보캠프 실무자가 한 남자와 호텔 방에서 만나 어떤 물건을 흥정하는 듯한 정황이 담겨있다. 한 남자는 “가치로 따지면 100억 가치는 충분하다”며 “이명박씨가 운이 좋은게 애초에 이걸 찾아서 보여줬으면 벌써 끝났어도 끝났을 것”이라는 말을 던진다. 이 녹음 파일은 한나라당에서 부른 경찰이 등장하며 마무리된다. 물건은 이 전 대통령이 BBK를 설립했다고 직접 말하는 2000년 10월17일 광운대에서의 강연 영상파일이다.

▲ 2000년 10월17일 광운대의 이명박 전 대통령 강연 영상. 지난 30일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 갈무리.
▲ 2000년 10월17일 광운대의 이명박 전 대통령 강연 영상. 지난 30일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 갈무리.
이 영상은 2007년 대선 3일 전 공개됐고 파문은 일파만파 커졌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선됐다. 이후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횡령 범죄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수사를 마무리했다. 당시 이명박 캠프에 몸 담았던 정두언 전 의원은 “광운대 강연은 거짓말이었고 검찰도 그걸 거짓말 친 게 맞다고 인정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끝나는 듯 했던 BBK사건은 잇단 소송 문건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가 새롭게 드러나는 모습이다. 옵셔널벤처스는 상장폐지 이후 새 경영진을 꾸려 옵셔널캐피탈로 개명했고 소액 주주들로부터 지분을 양도받아 미국으로 도주한 김경준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LA연방법원은 김경준씨에게 371억원을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는데, 정작 김경준씨는 스위스 계좌 140억원을 다스로 보냈다. 다스는 공교롭게도 옵셔널캐피털이 승소하기 직전 140억 원을 먼저 받아갔다.

여기에는 최근 시사인 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들이 나온다. 다스는 옵셔널벤처스에 190억원을 투자했던 회사인데, 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최근 시사인은 다스가 김경준씨로부터 140억원을 회수하는 과정에 이명박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개입돼있고 LA총영사관도 관여했다는 정황을 담은 문건을 보도했다.

<관련 기사:[단독] 다스의 140억 MB가 빼왔다?>

‘그것이알고싶다’ 취재진과 만난 김경준씨는 다스에 140억원을 돌려준 이유에 대해 “다스가 자신의 자금이 있는 스위스 계좌에도 소송을 걸었기 때문에 다스와 합의할 수 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정확히 답하지 않았다.

‘그것이알고싶다’는 더 나아가 다스가 옵셔널벤처스에 190억원을 투자하게 된 배경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김경률 회계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는 당시 다스가 옵셔널벤처스에 투자한 190억 원은 다스의 재무 상황 상 투자가 불가능한 금액이었다며 투기성격이 있다고 분석했다. 

취재진과 만난 다스 내부 관계자도 “190억원이라는 돈을 김경준이 잘하니까 무조건 여기(옵셔널벤처스)에 투자하라는게 말이 되냐”며 “실력 있는 회사인지 그 다음에 뒷배경에 MB가 있다는 것도 걔네들(옵셔널벤처스에 투자한 회사) 입장에서는 중요한 요소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 30일 방송된 '그것이알고싶다' 화면 갈무리.
▲ 지난 30일 방송된 '그것이알고싶다' 화면 갈무리.
‘그것이알고싶다’ 취재진은 140억원을 돌려받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김재수 당시 LA총영사관과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다스 측은 취재진에 보내온 입장문을 통해 “다스의 140억원 환수는 미국 소송과 별개로 스위스 검찰 결정에 의거 강제 이체된 것”이라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김경준씨와의 거래설은 허위사실”이라고 밝혀왔다. 취재진은 이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찾아갔지만 직접 만나 해명을 듣지 못했다.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있다. ‘그것이알고싶다’ 방송은 “누군가 공권력을 통해 돈을 가져갔다면 국정농단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며 “그것은 BBK 사건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유”라고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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