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선관위가 전담팀을 꾸려 대응 중에 있습니다. 어제까지 삭제 요청한 건수가 5870건인 걸로 나왔습니다.”
JTBC 뉴스룸이 지난 16일 보도한 내용이다. 선관위는 16일 네이버, 페이스북코리아 등 사업자들과 '가짜뉴스' 대응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대응방침을 발표했다. 선관위는 사업자와 협력 강화를 강조하며 이번 대선 정국에서 5780건의 게시물에 대해 삭제요청을 하고 5건을 고발했다고 밝혔다.
언론은 선관위의 발표를 인용해 “중앙선관위, 가짜뉴스 엄단 팔 걷어부쳤다” “선관위, 대선 앞두고 ‘가짜뉴스’에 엄포” “선거운동 시작 전 가짜뉴스만 4000여 건...선관위, 전면전 선포” 등으로 보도했다.
마치 수천건의 ‘가짜뉴스’가 삭제된 것 같은 착시를 준다. 그러나 삭제요청된 게시물과 가짜뉴스는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선관위가 ‘선거법 위반 게시물’과 ‘가짜뉴스’를 혼용하면서 와전된 것이다.
선관위가 지금까지 삭제요청을 한 5870건의 게시물은 ‘허위사실 유포 및 후보자 등 비방’ 4662건, ‘여론조사실시 및 공표방법 등 위반’ 1192건, ‘특정지역 등 비하모욕’ 5건, ‘기타’ 11건 순이다.
여기서 ‘허위사실 유포 및 후보자 등 비방’ 항목을 제외하면 가짜뉴스를 ‘언론기사를 흉내낸 게시물’로 보든 ‘언론 기사 중 악의적인 왜곡’으로 보든 가짜뉴스와는 무관한 통계다.
‘허위사실 유포 및 후보자 등 비방’도 실제 삭제요청된 내역을 살펴보면 허위사실을 담았다고 보기 힘든 내용이 적지 않다.
지난 총선 때 MLB파크의 한 댓글은 당시 나경원 후보 딸의 부정입학 의혹에 관해 “‘우리엄마가 나경원이야’(라고 나경원 의원의 딸이 면접 중 발언한 것) 말고도 관련된 의혹은 더 있다”고 밝혔을 뿐인데 삭제됐다.
윤상현 후보에 관해서는 “전두환 장군 청와대 있을 때 딸과 결혼해서 대통령 사위로 사시다가 (중략) 이혼하고 돈 많은 재벌가 롯데사위로 갈아타시고”라고 쓴 댓글이 삭제됐다. 유승민 의원의 얼굴을 ‘내시’에 합성한 이미지를 트위터에 올린 유저들의 게시물도 삭제됐다. 의혹제기나 풍자마저도 허위사실이나 비방이라는 이유로 삭제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선관위가 특정 게시물이 허위사실인지 판단하고 삭제요청을 할 권한이 있는지도 논란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관위가 게시물 삭제요청 및 고발 권한을 갖는 건 맞지만 선거 때마다 시민사회단체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해왔다. 오픈넷은 2007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자의 최태민-최순실 유착 문제를 제기했다가 처벌된 김해호 목사’사례를 언급하며 사법부가 아닌 선관위가 사실여부를 판단하는 게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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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후보자비방죄를 폐지하고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정보 삭제명령 제도를 폐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손지원 오픈넷 자문변호사는 “가짜뉴스가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사회적 합의처럼 이뤄지니까 기존에 해오던 심의검열에 가짜뉴스라는 이름을 쓰는 것 같다”면서 “기존부터 선관위가 해오던 일이고 시민사회에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해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가짜뉴스’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문제가 있는 제도를 합리화하는 ‘물타기’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