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대통령(문재인 대통령)·전전전 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 대 ‘전전 대통령(이명박 전 대통령)’ 이전투구.”

조선일보의 30일자 사설 제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과거사 파헤치기가 현 정권과 전전 정권 간 충돌양상으로 가고 있다”, “현 대통령과 전전전 대통령 측 대 전전 대통령의 사생결단식 충돌이 벌어지려 한다”는 것이 조선일보의 주장이다.

언뜻 보면 맞는 말이고, 공정해 보이는 보도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벌어진 각종 불법혐의의 실체들이 잇달아 공개되고 있고 이에 ‘맞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족도 뇌물수수에 관련된 공범인 만큼 수사할 수 있다”며 권양숙 여사 등 노 전 대통령의 가족들에 대한 고발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7년 9월30일자. 조선일보 사설.
2017년 9월30일자. 조선일보 사설.
전임 정권들에 대한 공격이 양 쪽에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모습만 놓고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 말마따나 안보·경제 위기 속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대한민국이 온통 과거, 전임 정권들에 대한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조선일보가 사설 제목을 ‘전전전’이라느니 ‘전전’이라느니 하는 표현을 쓴 것도 지금의 대한민국이 과거에 매달려 있다는 주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의 프레이밍은 조선일보 뿐 만이 아니다. 중앙일보는 홍준표 대표의 말을 보도하며 “거칠어지는 과거사 공방”이라고 표현했고 그밖에 많은 언론들이 ‘여야 공방’이라느니, ‘이명박을 노무현으로 맞받아치고 있다’느니 표현하고 있다. 양 측의 극단에서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언론보도만 보면 반반, 공정해 보이는 보도다.

그러나, 이 프레이밍은 왜곡이다. 매우 악의적이다. 속속들이 드러나는 이명박 정권의 불법 행위 의혹은 날이 갈수록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며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그리고 당시 정권이 자행한 행위는 헌법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매우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나 정진석 의원이 주장하는 내용은 실체 없는 의혹제기에 불과하다. 명백한 증거도 없이 벌이는 사실상의 ‘아무말 대잔치’에 가깝다. 이들은 일부러 자극적이고 악의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전임 정부 적폐로 향하는 시선을 끌고 있다.

그리고 언론은 이 ‘아무말 대잔치’를 받아쓴다. 조선일보의 사설처럼 의도가 느껴지는 것들도 있는 반면 그야말로 그냥 단순히 상호간의 말을 ‘지상중계’하는 매체도 있다. 하지만 ‘나오는 말을 옮길 뿐’ 이라는 항변은 무색하다. 쏟아지는 홍준표 대표 등의 악의적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옮겨 적는 매체들 또한 지금의 ‘적폐청산’ 국면을 ‘노무현 대 이명박’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사안의 중대성과 사실성, 모든 점에서 미루어봤을 때 지금 이뤄지고 있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움직임과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 줄로 설 수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열심히 전전 정부나 전전전 정부나 ‘그놈이 그놈’으로 보이도록 열을 올리고 있고, 이런 정치혐오적 풍토 위에서 당장 수사 대상으로 올라야 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금의 일들을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일어나는 퇴행적 시도”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역시 이런데 있어서는 ‘발군’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현 대통령 측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의 복수심에 불타고 있고 전전 대통령 측은 ‘그렇다면 다 까발려보자’는 식”이라며 “한반도 핵 위기가 일촉즉발인데 여당 사람들은 가진 힘의 9할을 전전 대통령에게 복수하는 데 쏟고 있는 것 같다. 양쪽 다 평정심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국면은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현 대통령과 전전전 대통령 측 대 전전 대통령의 사생결단식 충돌’이 아니다. 전전 대통령 재임기간 국가기관은 그야말로 불법의 온상이었으며 아직 수도 없이 많은 적폐의 정황이 근거로 남아있다. 반면 지금 자유한국당 등에서 주장하는 전전전 대통령 시절의 문제들(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부부싸움 때문이라던지, 권양숙 여사를 수사하라던지)은 근거 제시 없이 내뱉는 말로 오히려 처벌해야 할 허위사실 유포가 될 수도 있다.

적폐는 청산돼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배경이 된 ‘촛불 혁명’의 정신이다. 지난 27일 발표한 미디어오늘-에스티아이 정례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6.2%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사를 찬성했고(관련기사 - ‘국정원 문건 파문’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찬성’ 76.2%)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던 여론과 거의 비슷하다.

조선일보가 아무리 프레이밍을 해도, 다른 언론들이 우르르 ‘중립’이란 이름으로 이 프레이밍을 따라가도 민중들에게는 소용없다는 의미도 된다. 이제 조선일보가 자신의 힘을 맹신하며 ‘프레이밍’을 할 때는 지났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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