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토론 또는 치열한 토론, 후보자들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가 지난달 SBS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문 후보의 이런 생각은 18대 대선 전 박근혜 당시 후보와 맞붙을 때도 비슷했다. 당시 문 후보 측 김현미 소통2본부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토론에 대해 “이런 방식의 토론은 누가 더 암기를 잘했는지, 누가 더 보고 잘 읽었는지를 테스트하는 경연대회”라며 토론방식 변경을 요구했다.

하지만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후보의 입장이 변했다. 지난 15일 문재인 측 김경수 대변인은 “경기 중에 룰을 바꾸자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옳지 않다”며 끝장토론 제안에 대해 거부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월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MBC '대선주자를 검증한다' 특집방송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후보자가 한명 나와 사전 리허설까지 할 경우 이미지관리가 가능하다. 질문자로 지난 15일 문재인 캠프에 속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문재인 측, 포커스뉴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월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MBC '대선주자를 검증한다' 특집방송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후보자가 한명 나와 사전 리허설까지 할 경우 이미지관리가 가능하다. 질문자로 지난 15일 문재인 캠프에 속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문재인 측, 포커스뉴스

이재명 후보가 이날 “명색이 민주정당의 국가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는 후보가 국민검증을 위한 토론회를 계속 회피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국민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며 끝장토론을 제안했고, 안희정 후보 측 역시 “세 번의 합동토론이 끝났지만 변별력 없는 ‘맹탕토론회’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후보 간 1대 1토론, 주제·시간 제한없는 무제한 끝장토론을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 측은 16일 “문재인 후보에게 무제한 토론 모든 절차를 백지위임 하겠다”며 토론방식 변경을 다시 제안했다. 이 후보는 “문재인 후보 불참으로 민주당 지방의원협의회 공동주최 토론회 광주시민 1000명이 함께 주최하는 토론회가 취소된 상황”이라며 “박근혜 대통령 토론 회피를 비판했던 민주당이 후보의 내면과 정책·비전·철학 등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의 역행”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측이 토론회에 소극적인 모습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25일 KBS좌담회에 불참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문재인을 지지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KBS에서 출연금지를 받은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했지만 당시에도 검증받을 기회를 피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한 차례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최근 끝장토론 제안을 거부하는 데 대한 비판이 거세다.

현재 선관위가 주관하는 토론은 각 후보들을 함께 인터뷰하는 수준이다. 지난대선 당시 토론규칙은 질문시간 1분, 답변시간 1분 30초로 제한이 있었다. 충분한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당시에도 있었다.

지난 14일 민주당 당내 후보 토론회에서도 90분 중 50여분은 준비한 원고를 읽거나 외운 내용을 답하는 시간이었다. 두 후보가 30초간 묻고 40초간 답하는 코너 역시 답변시간이 짧아 불편한 질문이 나오더라도 넘어가기에 무리가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검증에 실패한 결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벌어졌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후보검증 방식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 박근혜씨는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보다 참모들이 써준 원고를 읽기만 해 비판을 받았다. 사진=SBS스페셜 화면 갈무리
▲ 박근혜씨는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보다 참모들이 써준 원고를 읽기만 해 비판을 받았다. 사진=SBS스페셜 화면 갈무리

[관련기사 : 문재인은 왜 민심을 한 걸음 뒤에서 따라가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국회의원들이 돌아가면서 하루 종일 진행한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수일간 하루종일 진행되지만 전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사안이기 때문에 아무리 길더라도 시민들이 직접 생중계를 지켜보거나 관련 기사들을 찾아서 잘잘못을 가릴 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제보하는 등 참여했다. 정작 대통령 후보를 검증하는 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선 TV토론회를 처음 도입한 미국은 토론과 검증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김창준 전 미국 공화당 연방하원의원은 SBS와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 후보 자질 검증시 중요한 점을 언급했다. 그는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투표를 자주 했는지, 범죄 기록이 없는지 본다”며 “가장 미국이 싫어하는 게 비리”로 꼽으며 “비리만 있다면 본인이 알아서 (선거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주도권 토론 역시 아예 90분간 양자토론을 허용해 ‘끝장토론’을 기본으로 한다. 토론회에서 후보자를 배치하는 것부터 다르다. 양당의 후보자만 화면에 정면으로 등장한다. 한국처럼 진행자가 화면 중간에 버티고 발언시간과 기회를 제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90분 동안 후보자간 각본 없이 진행된다.

▲ 미국 민주당 당내 후보경선 토론회 모습. 샌더스(왼쪽) 후보와 힐러리 후보. 사진출처=유튜브 토론회 화면 갈무리
▲ 미국 민주당 당내 후보경선 토론회 모습. 샌더스(왼쪽) 후보와 힐러리 후보. 사진출처=유튜브 토론회 화면 갈무리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18일 백악관에서 가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기자는 항상 비판적인 태도로 대통령인 저에게 민감한 질문을 해야하는 사람들”이라며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칭찬하기보다는 비판적 시각으로 봐야 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권력자들이 비판과 검증을 피하지 않는 자세를 보인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타운홀 미팅’ 방식을 택해 사전에 참모들이 준비한 답변이 아닌 후보 개인의 생각을 현장에서 바로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언론은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 사실여부를 검증하고 맥락을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미국은 당내 경선만 6개월 이상이 걸리고 대통령 선거까지는 1년 이상이 걸린다. 검증기간이 길기 때문에 의혹을 대충 넘기기 어렵고, 자진사퇴하는 후보도 많다. 반면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조기대선이 치러져 검증기간이 더욱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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