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당시 KBS 정치외교부장으로, ‘KBS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의 핵심 당사자라고 지목받는 이강덕 KBS 대외협력실장이 전직 외교관 자녀에게 특혜 인턴을 제공했다는 주장에 대해 5일 오후 전면 부인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지난 4일 “이 실장은 디지털 주간을 맡았던 지난 4월 외교부 고위급 출신 인사의 딸을 갑자기 디지털 뉴스부로 데려와 기사를 작성케 했고 KBS 홈페이지에 바이라인을 달아 출고까지 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련도 없는 ‘인턴 자료 조사비’란 명목으로 한 달에 180만 원을 급여로 지급했다”며 “다른 인턴들이 서류심사와 1·2차 면접 등을 거치며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 받는 180만 원을 아무런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지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급기야 6월 초엔 이 인사의 딸을 선발 절차도 없이 ‘해외 인턴’이란 명목으로 채용하려다 이를 알게 된 KBS 기자들과 기자협회가 문제를 삼겠다고 하자 마지못해 철회한 일까지 벌어졌다”면서 “한마디로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을 우롱하는 이른바 ‘낙하산 금수저 인턴’을 심고 거액의 돈과 혜택을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외교부가 이 실장을 공공외교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부 반발이 커졌고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번 위촉에 이 실장과 외교부 고위급 출신 모 인사와의 인맥이 작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며 “외교부 출신 인사는 이 실장이 워싱턴 특파원 시절 친하게 지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한겨레가 지난 4일 “KBS ‘도청 의혹’ 핵심 간부, 전직 외교관 자녀 ‘인턴 특혜’ 논란”으로 이 사안을 보도하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 오준 전 주UN대한민국대표부 대사가 지난달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미클럽이 주최한 ‘문재인 정부와 한미동맹 세미나’에서  한미관계의 전망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오준 전 주UN대한민국대표부 대사가 지난달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미클럽이 주최한 ‘문재인 정부와 한미동맹 세미나’에서 한미관계의 전망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언론노조 KBS본부가 언급한 ‘외교부 고위급 출신 인사’는 오준 전 UN 대사였다. 그의 딸인 오씨는 지난 4월부터 한 달 반 정도 KBS와 함께 영어 외교 사료를 번역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오씨는 과거에도 KBS 시사 프로그램에서 인턴을 한 경험이 있다. 이번 채용 전부터 이 실장과는 알던 사이였다.

다만 당사자들은 ‘낙하산 인턴’이라는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현재 싱가포르 난양공대 국제문제연구소(RSIS)에서 방문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오준 전 대사는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딸 오씨에 대해 “KBS에서 인턴을 한 것은 이번뿐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다”며 “딸은 미디어를 전공했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를 받았다. 이강덕 국장과는 나도 알고 내 딸도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오 전 대사는 인턴 채용 절차에 대해서 “어떤 절차를 통해 인턴을 하게 됐는지 전혀 모른다”며 “다시 KBS 인턴을 하게 됐을 때, 내가 인턴을 하게 해달라고 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실장 역시 관련 사실을 부인하며 “몇 달 간 어렵게 수소문해서 한글과 영어 모두에 능통한 사람을 간신히 채용한 것”이라며 “그쪽(오준 대사 측)에서 무엇이 아쉬워서 우리(KBS)에게 그러겠나. 내가 사정해서 어렵게 모셔다 쓴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실장은 또 “오씨에게 원문 자료 번역을 시켜보니 일선 기자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정확하게 번역했다”며 “이런 인재는 구하기 굉장히 힘들다. 그가 시간이 나는지 확인해서 다시 모셔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이 실장과의 일문일답.

- 오준 전 대사 딸과 관련해 낙하산 인턴 논란이 있었는데?

이강덕(이하 이) :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인턴은 외교 사료를 한글화하는 작업을 위해 별도 고용된 것이다. 보도본부 차원에서 기초 훈련하고 육성하는 인턴과 다른 케이스다. 실제 디지털뉴스부에선 다양한 인원을 다양한 형태로 채용하고 있다. 각 프로젝트 별로 인턴들이 별도 채용된다. 이를 테면 ‘소다’라는 인터뷰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를 담당하는 차장급 CP 역시 필요한 작가와 디자이너 인턴을 뽑아 쓰고 있다.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협찬을 받아 프로젝트하는 것도 있는데 이 역시 팀장이 알아서 인력을 운용하고 있다.”

- 오씨를 채용한 것이 ‘실력’ 때문이라는 것인가?

이 : “몇 달 간 수소문해서 한글과 영어 모두에 능통한 사람을 뽑은 것이다. 당초 인턴 인력과 행정을 담당할 수 있는 사람, 이렇게 두 명을 뽑을 수 있도록 예산이 확보돼 있었다. 그 친구(오씨)에게 번역을 시켜보니 일선 기자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원문을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번역했다.”

- 오씨 이름으로 기사가 나가기도 했다.

이 : “번역한 것 중에 ‘이건 기사로 내도 되겠다’ 싶은 것은 KBS 기자가 조금 다듬고 데스크 지시 하에 출고했다. 다만 그냥 내보내면 번역자 표기가 안 되어서 번역자 이름과 이메일 주소 등을 넣은 것이다. 틸러슨(미 국무장관)이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발언한 자료도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것도 금방 번역해냈다. 내가 리드 멘트를 써서 내 이름으로 출고하고, 대신 밑에다 번역자인 그 친구 이름을 써놨다. 이 친구가 기사를 10개 가까이 했을 텐데, 영어에 워낙 빨라서 국내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은 것, 필히 다뤄야 하는 것 위주로 속보 처리하기도 했다.”

- 지난 6월 초 오씨를 ‘해외 인턴’ 명목으로 채용하려다 KBS 구성원들이 반발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 “내가 아이디어를 낸 것은 아니다. 다만, KBS는 외교 문서를 한글로 번역해 뉴스 사이트에 싣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특종성이나 단독성이 강한 정보는 뉴스 아이템으로 만들고, 그런 것들을 동영상으로 제작 시 영어 실력을 활용해 검증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인턴 담당 팀에서 6월 초 시작되는 인턴 교육 기간에 이 친구를 데려다가 동영상 제작 및 기사 작성 등의 교육을 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 같다. 6월 초 그 일(KBS 기자들의 반발)이 있은 뒤에는 외교 사료 번역과 관련한 도움을 받았다. 회사에 나오지는 않고 프리랜서 형태로 이메일 등을 통해 작업했다. 총 한 달 반 정도 일했고 적법하게 대가를 지급했다.”

▲ 이강덕 KBS 대외협력실장이 지난해 1월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창립 59주년 기념식에서 신임 총무로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강덕 KBS 대외협력실장이 지난해 1월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창립 59주년 기념식에서 신임 총무로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오준 전 대사와 친분이 있기 때문에 ‘낙하산 인턴’ 의혹이 이는 것 아닌가?

이 :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오씨가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내가 사정해서 어렵게 모셔온 것이다. 한겨레 기사는 마치 그쪽(오 전 대사 측)에서 아쉬워서 KBS 쪽에 뭘한 것처럼 썼다. 기자에게 설명까지 해줬는데 일방적으로 기사를 썼다. 오보까지도 인정하는 게 언론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외눈박이처럼 쓰는 건 문제다. 법적 조치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분(오준)에게 얼마나 누가 되겠나. 노조 이야기만 듣고. 노조는 이 건과 관련해 내게 물어온 바도 없다.”

- 오 전 대사는 ‘딸도 이강덕하고 아는 사이’라고 말한 부분이 있다.

이 : “맞다. 그러나 영어를 그 정도 하는 줄은 몰랐다. 오씨가 오 전 대사의 딸이라는 것도 알고 본 적도 있지만 그가 이 정도의 인재인 줄은 몰랐다.”

- 오 전 대사에 따르면, 과거 오씨가 KBS에서 인턴을 했다고 하는데?

이 : “시사 프로그램에서 인턴을 한 것으로 안다. 내가 워싱턴 특파원이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 인턴 경험 때문인지 아주 실력이 뛰어났다. 우리에겐 매우 필요하고 적합한 사람이다. 외교 사료 관련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면 그의 시간을 확인해서 다시 한 번 (채용 혹은 협력에 대해) 검토해봐야 한다.”

- 공공외교위원회 민간위원은 고사한 것이 맞나?

이 : “8월1일부터 보직이 바뀌었다. 보도본부를 떠났다. 그래서 사양했다.”

-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 실장은 뉴스타파에서 ‘사안을 잘 모른다’는 입장이었는데?

이 : “뉴스타파 보도를 보진 않았다. 해당 발언의 취지는 ‘KBS 기자가 도청을 했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한 이상 다른 것은 알아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 KBS 기자가 연루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건가?

이 : “KBS 기자가 도청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녹취록이 있다느니 그걸 누구에게 줬다느니 하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깊이 알아볼 필요도 없다. 그 문제를 자꾸 노조가 다른 의도를 갖고 거론하는 데 부당한 것이다.”

-KBS 기자협회가 진상조사위를 꾸려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 “기본 전제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에 내게 요구할 자격이 없다.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이란?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은 지난 2011년 6월 KBS 기자가 민주당 대표 회의실을 몰래 녹음해 그 내용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한선교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다. 민주당 최고위원들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이 KBS 수신료 인상을 두고 비공개 회의를 개최한 다음날, 한선교 의원이 ‘녹취록’이라며 회의 내용을 폭로해 ‘불법 도청’ 논란이 일었다. KBS ㄱ기자가 핵심 도청 당사자로 지목됐으나 그는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증거불충분’으로 KBS 기자 연루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보도국장이었던 임창건 KBS 아트비전 감사가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KBS가 관련 문건을 한나라당에 전달했다”, “회사의 업무 성격상 대외 업무는 고대영 보도본부장(현 KBS 사장)이 관장했다” 등의 발언을 해 사건은 재점화됐다. 

지난 6월 언론시민단체들은 사건 당시 KBS 사장이었던 김인규 경기대 총장, 한선교 의원과 보도본부장이었던 고대영 현 사장, 이강덕 전 KBS 정치외교부장(현 대외협력실장),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KBS 정치외교부 ㄱ 기자 등 6명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KBS 기자협회도 이 사건 진상을 밝히기 위해 ‘민주당 도청의혹사건 KBS 기자협회 진상조사위’를 출범시켜 재조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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