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 4개, 사과 하나가 추석선물?’ 경비원 아버지가 받은 선물”

지난달 30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경비원 아버지가 컵라면과 사과를 추석 선물로 받았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기사는 파급력이 컸다. 포털 다음의 해당 기사 댓글이 4873개에 달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세상에 줄게 없어서 컵라면을 선물이라고 주냐. 기가 찬다”는 댓글에 추천 16911개가 붙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간식으로 받은 컵라면과 사과를 추석 선물이라고 장난으로 속였던 것이라고 아들이 해명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중앙일보는 “‘컵라면 추석 선물’ 논란 경비원 아들 ‘장난으로 보내신 걸 속상해서 올렸다’ 해명”이라는 제목의 ‘유체이탈’기사를 올렸다. 자사보도가 오보로 밝혀졌는데도 첫 기사 본문에는 아무런 정정도 하지 않았다.

▲ 경비원 부실 추석선물 논란을 다룬 중앙일보 보도.
▲ 경비원 부실 추석선물 논란을 다룬 중앙일보 보도.

커뮤니티 게시글을 받아 쓰는 언론보도로 사실과 다른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240번 버스 논란은 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지난달 서울시 240번 버스 운전기사가 아이만 내리고 어머니가 내리지 않은 채 출발하고, 세워달라는 어머니에게 욕설을 한 것을 목격했다는 커뮤니티 게시글이 올라왔다. 240번 버스 논란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운전기사는 규정대로 정차했으며 아이가 버스에서 내린 걸 어머니가 뒤늦게 알아차린 게 발단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사건과 관련한 게시글이 나올 때마다 받아쓰며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소홀했다. 스포츠경향, 일요신문은 최초 글을 반론 없이 그대로 옮겨 썼고 이후 또 다른 목격자의 증언, 운전기사 딸의 해명 등이 나올 때마다 언론은 기사화했다. 운전기사 자녀의 해명글이 올라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언론이 조사 중이라는 서울시 입장을 말미에 전했을 뿐 당사자에게 제대로 된 해명이나 입장을 받지 않았다. 포털 네이버에서 240번 버스 논란과 관련한 기사만 706건에 달했다.

특정인이나 단체에 대한 문제제기 글이 올라온다면 언론의 역할은 받아 쓰는 게 아니라 취재를 하며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게 커뮤니티, SNS글과 언론의 차이점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해 사실과 다른 주장이나 루머를 바로잡았다면 애먼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최소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취재활동을 외면한 채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이용한 트래픽 장사에 나서면서 왜곡된 정보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그 결과 개인이나 단체가 여론의 비난을 받는 등 큰 피해를 받고 있다. 언론이 이런 상황을 초래하는데 사실상 부채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 240번 버스 논란을 다룬 언론보도 갈무리.
▲ 240번 버스 논란을 다룬 언론보도 갈무리.

문제는 언론이 반성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매일경제는 지난달 15일 사설에서 240번 버스 논란을 언급하며 “많은 이들이 SNS에 범람하는 각종 정보의 진위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실어나르기에 바쁘고, 어떤 사건이 터지면 군중심리에 휩쓸려 특정 대상에게 무차별적인 공격과 증오를 퍼붓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낯”이라며 되레 누리꾼을 비판했다. 매일경제는 “이용자들 스스로 비판 없이 정보를 맹신하는 악습을 바꾸려는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14일 만물상을 통해 “자극적인 먹잇감만 생기면 집단최면 걸린 듯 달려들어 몽둥이질을 해대는 것이 사이버 세상의 병리현상”이라며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글 하나가 누군가를 죽이는 흉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240번 버스 논란 당시 커뮤니티 게시글을 중심으로 기사를 쓴 조선닷컴 보도(위)와 논란을 커뮤니티 탓으로 돌린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 240번 버스 논란 당시 커뮤니티 게시글을 중심으로 기사를 쓴 조선닷컴 보도(위)와 논란을 커뮤니티 탓으로 돌린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누가 흉기였고, 누가 무책임했던 것일까. 다음은 조선일보 기사다. “‘아이만 내렸어요’…엄마 절규 무시하고 달린 ‘240번 버스’에 들끓는 분노” “‘240번 기사님 딸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반박글”. 다음은 매일경제의 기사다. “아이 혼자 내려 울부짖는 엄마 외면한 240번 버스에 ‘민원 폭주’” “‘240번 버스기사 딸’ 주장 글 등장…진실은?” 중계를 하듯 상황을 전달하며 논란을 확산시킨 건 이들 언론이다.

사건 후 240번 버스기사가 커뮤니티글을 사실처럼 단정한 인터넷 언론을 고소할 수 있는지 광진경찰서에 문의했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무단으로 올리신 기자분 제발 내려주세요.” 경비원의 자녀는 해명글에서 자신의 주장을 퍼 나른 커뮤니티 게시글이 아닌 기사를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SNS나 커뮤니티 비판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언론의 자성과 변화다. 문제는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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