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업소에서 불이 났다. 업소 관계자 1명과 성매매여성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경찰은 4개월 뒤인 지난달 말 ‘총괄운영자’ 박모씨를 비롯해 15명을 수사 중이며, 건축법·소방법 위반 사실 등 화재 관련 혐의점은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사건규명과 피해지원을 위해 꾸려진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확한 진상과 책임소재 규명을 촉구했다. 이날 회견에선 언론보도 행태가 경찰만큼 자주 거론됐다. 이들은 포주의 말만 옮긴 언론, 사실확인 않고 보도자료를 받아쓴 언론, 피해보다 성매매집결지란 소재에 집중한 언론에 ‘제대로 된 보도’를 촉구했다.

화재 당일 현장을 찾은 천호동 소재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상담소 ‘소냐의집’ 이종희 소장과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정미례 대표에게 실상은 보도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이들은 ‘보도의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 천호동 소재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상담소 ‘소냐의 집’ 이종희 소장이 지난 7일 천호동 집결지 화재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가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천호동 소재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상담소 ‘소냐의 집’ 이종희 소장이 지난 7일 천호동 집결지 화재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가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포주가 ‘합숙소’라 말한 곳은 성매매 영업공간

화재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기자들은 ‘누구든 입 여는 사람’을 찾았다. 현장에서 입을 연 관계자들은 성매매집결지 내 포주였다. 대다수 언론이 이곳 ‘상인회장’이라며 그의 발언을 기사에 주되게 인용했는데, 그는 이차성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업주대표(자칭 ‘집창촌 상인회장’)다. 이들은 “현장에서 이차성 업주대표가 말하기 시작하니 기자들이 그곳에 모여들어 질문하고 받아적더라”고 돌이켰다.

업주 주장은 여과없이 기사화됐다. 이차성 대표는 여성들이 있던 곳이 ‘합숙소’였고, 첫 사망자가 업소 ‘주인’이라고 했다. 기사들은 2층이 마치 퇴근해 쉬도록 따로 마련한 합숙소인 듯 표현했다. 그러나 여성들이 있던 2층은 단순히 숙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영업방으로, 여성들은 같은 자리에서 성매매를 하고, 먹고 자며 생활했다.

이종희 소장은 “출퇴근이 금지된 건 아니지만, 형편 탓에 여성 대부분이 영업소에서 숙식한다. 장소 자체가 여성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있고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숨진 업소 관련자도 주인이 아닌 주변 관계자로 확인됐다.

▲ 지난해 12월22일 오전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집결지에서 화재가 발생한 성매매업소 창살에 그을음이 남아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해 12월22일 오전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집결지에서 화재가 발생한 성매매업소 창살에 그을음이 남아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통신사를 비롯한 언론은 업주들 입을 빌려 “이 가게의 업주가 여성들을 구하고 병원에 실려갔다” “여성들이 술이나 약을 먹고 자다가 못 피했다” “업소는 소방훈련을 성실히 수행하는데, 일부 여성이 제대로 참여 안 한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업주를 미화하고 여성에게 참사 책임을 돌리는 발언으로, 근거는 없었다. 

정미례 대표는 “업주들의 코멘트가 마치 제3자인 현장 주민 증언인 듯이, 검증도 거치지 않고 보도됐다”고 했다. 그는 “일반 성매매·착취 이슈에서도 피해 여성들은 낙인이 두려워 나서지 못하는데, 포주가 스피커가 돼 자기 이해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성매매여성에 대한 성적·사회적 낙인을 담은 표현도 자주 등장했다. 국민·동아·세계·중앙일보 등 일간지와 JTBC·YTN 등 방송사, 통신사까지 주요 언론사들이 ‘집창촌’이란 표현을 썼다. 한 언론사는 ‘성○○씨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식으로 피해자 신변을 일부 공개했다가 한 활동가가 항의한 뒤 입장표명 없이 기사를 내렸다.

▲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관련 검색결과. 네이버 뉴스검색 갈무리
▲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관련 검색결과. 네이버 뉴스검색 갈무리

“모두가 여성에게 붙어 기생하는 거죠”

이같은 보도 피해가 계속되는 근본 이유는 언론이 성매매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다. 미디어엔 성매매여성과 업주‧성구매남성의 관계가 대등하고 자발적으로 비치기 일쑤다. 이들은 ‘실상은 전혀 다르다’고 했다.

천호동집결지에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청소년부터 성매매에 노출돼 10~20년 이상 된 경우다. 영업비용은 성매매여성에 전가되는 반면, 모든 권한은 업주가 지닌다. 콘돔부터 영업 시 입는 옷, 성구매남성이 마시는 술까지 대개 여성이 지불한다. 여성이 ‘영업방’에서 지내는 값을 월세 격으로 100만원씩 지불하기도 한다. 결근‧지각비가 있어 아파도 쉬지 못한다. 이 소장은 “매일 적게는 5명에서 10명씩 상대하는 걸 몸이 감당하지 못하는데, 업주가 결근비를 내게 한다. 30만 원이 보통”이라고 했다.

실제로 공대위는 이번 화재 희생자의 핸드폰에서 ‘이모, 몸이 이렇게 아픈데 오늘 일 안 하면 안 되느냐’고 업주에게 허락을 구하고, 얻지 못하자 ‘주사이모’에게 약을 놔 달라고 하는 대화기록을 발견하기도 했다.

▲ 지난해 불이 난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업소는 현재 폐쇄됐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해 불이 난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업소는 현재 폐쇄됐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모’와 ‘삼촌’ 같은 가족적인 호칭도 실상을 모르면 오해를 낳는다. 이들은 “집결지에서 사용하는 가족 개념은 다른 곳과 다르다”고 했다. 여성은 대개 업주를 삼촌, 엄마나 이모라고 부른다. 성구매자를 호객하는 이(삐끼이모)부터 아픈데 일하도록 약처방하는 이(주사이모), 알선업자(삼촌), 성구매자가 난동 피우는 상황을 정리하는 이(정화삼촌)까지 모두 호칭은 친근하다. “실제로는 이들 모두가 여성의 삶에 붙어 기생하는 거죠.” 이번에 여성들이 업주로 지목한 이는 ‘큰이모’로 불렸다.

정 대표는 기자들이 이같은 실상을 알지 못하고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채 화재사건을 ‘현장르포’ 식으로 기사화해, 현실을 왜곡하는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당사자들 “내가 저렇게 죽을 수도”… 언론, 지원대책 조명해야

이같은 언론보도를 접한 청호동 집결지의 당사자 여성들의 반응은 ‘내가 저렇게 죽을 수 있구나’하는 ‘충격’이었다.

“기사들을 보면 숨진 여성을 애도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고, 화재원인을 넘겨짚거나 집결지란 소재에만 초점을 맞춰서 보도했어요. 그리고 일주일도 안돼 (관련 보도 흐름은) 모두 내려갔어요. 여성들은 ‘내가 이런 상황에 아무도 추모해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화재현장 앞에 추모공간을 만들어 미사를 드리고 노란 학을 접어 추모했더니, 다른 성매매여성들이 찾아와 마스크를 쓰고 동참했어요.” (이종희 소장) 

▲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정미례 대표가 지난 7일 천호동 집결지 화재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정미례 대표가 지난 7일 천호동 집결지 화재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들은 언론이 여성들이 당한 희생한 배경과 지원대책을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물주와 업주, 재건축조합의 긴장관계에서 성매매여성들이 희생됐고, 지금까지 지원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해당 업소는 재건축 구역으로 지정된 뒤 223세대 대다수가 이주하고 남은 18곳 가운데 하나였다. 집결지 일부를 차지하는 천호2구역에선 당시 조합과 업주 간 보상금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업주들은 이주보상비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여성들을 이용해 버티고 있었고, 이 힘겨루기 와중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이런 상황이 어느 집결지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언론은 철거 며칠 앞두고 불이 났다고 강조했어요. 그렇다면 철거를 앞두고도 왜 영업이 지속됐고, 어떻게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파고들어야 했어요. 군산에서 미아리까지, 왜 집결지에서 화재만 발생하면 대형사고에 이를 수밖에 없을까요.”

이 소장은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부분 중 하나”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법적 근거는 한층 강해졌다. 지난해 말 제정돼 시행을 앞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성매매를 ‘여성폭력’의 하나로 규정해 방지대책을 수립하도록 명시했다. 최근 공대위는 강동구청 및 구의회와 면담해 성매매여성들을 지원하는 조례 제정을 촉구했고,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얻은 상태다.

“성매매여성들은 10~20년 간 폐쇄된 환경에서 생활해 사회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업주 등이 지운 빚과 사채도 있습니다. 이는 어느 집결지나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탈성매매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여기서 나와 또 다른 집결지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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