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일 인터넷 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정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정의당 추혜선 의원실 주최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에선 전성인 홍익대 교수, 박상인 서울대 교수 등이 참석해 정부의 은산분리 완화 명분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은 은행의 개념을 바꾼 새로운 금융상품과 서비스로 국민의 큰 호응을 얻었고 금융권 전체에 전에 없던 긴장과 경쟁을 불러 일으켰다”며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도 금융시장에 정착하는 데 규제가 발목을 잡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해 혁신 IT기업이 자본과 기술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도 “대주주의 사금고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주주 자격을 제한하고 대주주와 거래를 금지하는 등의 보완장치가 함께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정을 완화하겠다고 밝힌 이유는 △새로운 금융상품과 서비스 개발이 가속화 △인터넷전문은행, IT, R&D, 핀테크 등 연관 산업의 일자리 창출 △금융권 전체의 경쟁과 혁신 촉진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규제혁신이 핀테크를 4차 산업혁명시대의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정부 의지를 거듭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 8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 주최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8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 주최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반면 은산분리 완화를 반대해온 경제전문가들은 문 대통령 연설을 비판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대통령 연설이 “앞뒤가 안 맞는다. 이런 연설문을 쓴 참모들은 책임져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상인 교수는 “문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이 바람을 일으켰다면서도 규제 때문에 잘못됐다고 연설했는데, 바람을 일으킨 것은 ‘카카오 뱅크’고, 잘되지 못한 사례는 K뱅크인데 두 인터넷 은행의 성공과 실패는 은산분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다.

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카카오뱅크는 6월말 기준 약 6.8조 원으로 대출잔액을 유지하면서 연말까지 대출잔액 9~10조 원으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걸로 보여 ‘인터넷 전문은행’ 성공 사례다. 카카오뱅크가 성공한 건 간편 로그인, 비대면 전세자금 대출 등 혁신 기술 때문이다. 또한 박 교수는 카카오뱅크가 연말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한다면 이후 상장을 예상할 수 있고, 상장을 하면 자본확충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내다봤다.

반면 K뱅크는 약 1.3조 원의 대출잔액을 유지하면서 자본금 부족 상태다. 박 교수는 K뱅크 실패이유를 가계신용대출시장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탓이라고 봤다.

박상인 교수는 “K뱅크의 실패는 은산분리 규제 때문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가계신용대출 증가에 대한 관리가 강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K뱅크나 새로운 인터넷전문은행의 성공 가능성도 의문시 된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교수는 이날 오전 추혜선 의원 주최 토론회에서도 정부가 제대로 은산분리 규제완화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박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 집권 2년 만에 이런 발제를 해야 하는 마음이 너무 참담하다. 금융위원회 인사들에게 오늘 토론회에 와달라고 주최 측이 요청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정확한 논리가 있다면 와서 피하지 말고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도 정부가 내세운 은산분리 완화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전성인 교수는 “4차 산업혁명 활성화의 경우, 빅데이터 활용이나 블록체인 기술 등과 은산분리 완화는 관계가 없다”며 “기존 은행의 IT 투자 촉진이 더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에도 전 교수는 “K뱅크는 300명 미만의 고용인원이며, 인터넷전문은행은 고객과 대면하지 않고 거래를 활성화하는 게 취지인데 어떻게 고용이 늘겠느냐”며 “IT 산업 고용의 촉진을 위해서라면 은산분리 완화가 아니라, 기존 은행의 IT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7일 국회에서 열린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에서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 7일 국회에서 열린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에서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이와 관련해 백주선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도 “핀테크나 금융기술혁신은 은산분리와 무관하며, 인터넷전문은행은 일자리 창출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며 오히려 창구 수 감소로 기존 일자리 상당수가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교수는 정부가 발표한 보완장치도 모자라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거대 산업자본의 규제준수 능력을 통제하기 어렵기에 기업대출 금지만으론 보완장치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과거 사례 등을 보면 철저한 감독을 기대하는 게 어렵고, 동양사태나 상호저축은행 사태만 보더라도 비금융기업이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고동원 교수는 “대주주인 정보통신기술 기업이 부실화되면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터넷 전문은행도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고, 그 피해는 예금자 및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전성인 교수는 정부가 은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K뱅크의 부실 가능성을 은폐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전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실패 사례인 인터넷전문은행 문제에 대해 K뱅크 인허가 비리와 관련한 금융위원회 감사를 기각했다”며 “이 기각 결정으로 문 정부는 K뱅크의 건전성 문제를 보증해 준 상황이 돼 버렸고 정부가 이런 상황을 숨기기 위해 갑자기 논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은산분리 완화를 주장할 게 아니라, 실패한 정책인 K뱅크를 인허가 해주는데 연루된 이를 엄중 문책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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