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법정 세우는 것 나라에 안 좋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14일자 칼럼이 눈에 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굳이 법정에 세울 필요가 없다는 주장. 대선과 나라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다.

김 고문은 “물러나는 대통령을 향해 구속하라고 외치고, 물러나는 헌법재판관을 향해 ‘퇴임하면 두고 보자’고 협박하는 다중의 분노에 전율마저 느낀다. 우리에게는 ‘한발 물러남’이 없다”고 비판했다. 전형적 양비론이다. 

이어 “헌재의 결정에 무조건 ‘승복’하는 것이 법치적이고 민주적인 것은 아니”라며 “헌재의 판결에는 나 자신이 승복할 수 없는 법리(法理)도 있다. 헌재의 판결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승복이 아니라 행동의 절제”라고 했다.

▲ 조선일보 14일자 김대중 칼럼.
▲ 조선일보 14일자 김대중 칼럼.
그러면서 “엎어진 사람 밟고 시신에 칼질하고 모욕주고 막말하며 ‘이겼다’며 승리에 도취하는 것은 민주 시민의 자세가 아니”라며 “나락에 떨어진 듯한 비통함을 삭이고 있을 사람에게 ‘왜 승복 성명을 안 내느냐’ ‘언제 청와대를 비울 것인가’ ‘왜 안 나가나, 불법 점거다’ 운운하며 몰아세우는 야권과 언론의 태도에선 육식동물의 냄새가 난다”고 비판했다.

이 칼럼 핵심은 다음이다. “이제 그 정도 했으면 앞을 보고 나아갔으면 한다. 불행하지만 ‘박근혜’는 이제 우리에게 ‘과거’다, ‘전 대통령’이다. 그만큼 했으면 분이 풀릴 만도 한데 그를 굳이 법정에 세우는 것은 대선에도 안 좋고 나라 안정에도 안 좋다.”

문제는 이중잣대다. 김 고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한 달여 전인 2009년 4월27일 “노무현씨를 버리자”라는 칼럼을 썼다. 노무현과 박근혜를 대하는 조선일보 고문의 교활함이 드러난다. 

“그를 기소하지 말고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雜犯)수준이다. 정치자금도 아니고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 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쓰고 세금에서 훔쳐간 것이 더 부끄럽다.”

“우리 국민이 노무현씨를 국민적 차원에서 사면키로 하는 데는 한 가지 분명한 전제조건이 있다. 노씨를 버리되 철저히 ‘버리는' 것이다. 그가 국민 앞에 자신의 마지막 성실성을 보이려면, 그래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국민의 용서를 받고 싶다면 검찰에 출두하는 방법에서도 장난을 치거나 사안을 이벤트화(化)하지 말 것이며, 검찰에서 진술하는 과정에서도 보다 겸손하고 피의자다워야 한다.”

▲ 조선일보 2009년 4월27일자 김대중 칼럼.
▲ 조선일보 2009년 4월27일자 김대중 칼럼.
[김대중 칼럼] 노무현씨를 버리자

황교안 띄운 조선일보

조선일보 14일자 1면 제목은 “황교안 대선출마 ‘선택의 1주일’”이다. 조선일보는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에 출마할지 여부가 주목된다”며 “보수 진영 주자들 중 지지율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황 권한대행의 출마 여부는 대선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중요 변수”라고 평가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세론이 공고하고 야권 후보들과 민주당 지지율이 50%를 상회하며 정권 심판론이 거센데 황 권한대행 출마 여부가 대선 구도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은 소망에 가깝다.

그럼에도 보수 진영과 언론이 ‘황교안 카드’를 매만지는 까닭은 이 신문 4면 “한국당 지지율 11%인데… 대선 예비주자만 11명”이라는 기사에서 잘 드러난다.

▲ 조선일보 14일자 1면.
▲ 조선일보 14일자 1면.
원유철 의원, 안상수 의원, 이인제 전 최고위원,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신용한 전 청와대 직속 청년위원장, 조경태 의원 등이 이미 자유한국당에서 출마를 선언한 이만 6명이다. 14일엔 김관용 경북지사가 출마 선언할 예정이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태호 전 최고위원도 고심 중이다.

한국갤럽의 3월 2주 차(7~9일)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자유한국당은 11%로 더불어민주당(43%)에 크게 못 미친다. 대선 주자의 경우에도 황 권한대행이 9%, 홍 지사가 1%이고 다른 주자들은 1% 미만이다. 무의미한 수치다.

보수 진영 바람과 다르게 황 권한대행에 대한 비판 여론은 크다. 경향신문은 14일 사설에서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실정에 너무나 큰 책임이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한 온갖 비리가 황 권한대행이 총리로 또는 법무장관에 있을 때 저질러졌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국가를 위해 공평무사하게 국정을 관리했다는 본인 평가와 달리 시민들은 그가 박근혜 정권의 실패를 연장했다고 보고 있다”며 “국정교과서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등 논란이 많은 정책을 강행, 국론을 분열시켰다”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14일자 1면.
▲ 경향신문 14일자 1면.
경향신문은 “그에게는 탄핵 정국에서 내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중차대한 임무가 맡겨졌다”며 “박 전 대통령이 헌법 위반으로 대행체제라는 부담을 시민들에게 안겨준 것도 모자라, 황 권한대행이 대행의 대행체제라는 위태로운 상황을 조성하겠다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세계일보는 “황 대행이 지금 국민과 국가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황 대행은 국정을 얘기하기 전에 자신의 거취부터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현준 靑 행정관, 전경련에 ‘아스팔트 극우’ 지원 압력”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로부터 “허현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마치 돈을 맡겨둔 듯 찾아와 보수단체 지원을 요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사실을 한겨레가 13일 확인했다. 

허 행정관은 한국자유총연맹, 어버이연합 등에 관제 데모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특검은 허 행정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는데 이는 박찬호 전 전무 등 전경련 관계자들로부터 “허 행정관이 A4 용지에 지원해야 할 단체 이름과 금액을 써가지고 와서 으름장을 놓듯 지원을 요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데 따른 것이다.

▲ 한겨레 14일자 1면.
▲ 한겨레 14일자 1면.
허 행정관이 지원을 요청한 단체는 주로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 보수·극우 성향 단체들이었다. 한겨레는 “전경련 쪽이 예정된 금액만큼 돈을 지원하지 않을 땐 ‘분기별 이행내역’을 보고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보수단체 대표들을 직접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한 전경련 관계자들은 “보수단체 대표들이 직접 찾아와 ‘청와대가 얘기가 다 됐다고 했는데 왜 지원하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특검은 전경련으로부터 계좌이체 내역은 물론 허 행정관이 직접 작성해 전경련에 전달한 ‘지원요구 리스트’도 확보했다. 

특검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구속)으로부터도 ‘허 행정관의 제안으로 전경련에 지원을 요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한겨레는 “특검은 허 행정관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와 공갈 혐의 등으로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수사 대상 범위 논란 때문에 검찰에 관련 기록을 일체 넘겼다”고 설명했다.

박근혜의 ‘자택 정치’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에 불복했다. 끝까지 국민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지 세력에 결집 메시지를 던지면서 ‘콘크리트 지지층’을 기반으로 향후 대선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3면 “친박 호위대 앞세워 반격 도모… 박의 ‘자택 정치’ 신호탄”이라는 기사를 통해 “‘자택 정치’를 통해 결백을 주장하며 지지층을 결집하는 한편, 친박근혜계 정치인들을 발판으로 삼아 대선 및 그 이후까지 보수세력의 중심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 한겨레 14일자 3면.
▲ 한겨레 14일자 3면.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삼성동 자택 앞에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진실은 밝혀질 것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파면 ‘불복’ 메시지로 읽혔다. 

한겨레는 “‘태극기 시위대’ 등 지지세력에게 탄핵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설파해 헌재 결정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장외 여론전을 통해 검찰에 ‘정치적 부담’을 안기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러한 구상의 축은 자유한국당 친박계 의원들이다. 친박계 큰형 격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총괄, 윤상현·조원진·이우현 의원이 정무, 검사 출신 김진태 의원이 법률, 박대출 의원이 수행 업무를 맡기로 했단다. ‘자택 앞 메시지’를 대독한 민경욱 의원은 대변인 격으로 활동한다.

언론의 평가는 박하다. 국민일보는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들이 2008년 친박연대의 길을 다시 걸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며 “지금의 친박계도 탄핵 후 고령층과 TK(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된 박 전 대통령 동정 여론과 탄핵 반대 세력을 활용해 정치적 재기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중앙일보 14일자 사설.
▲ 중앙일보 14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박 전 대통령과 친박은 지난해 4월 총선과 촛불집회, 새누리당의 분당과 자유한국당으로 간판 교체, 헌재 판결과 국민 여론에 의해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존재들”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그가 전직 대통령의 자격으로 역사와 민심의 심판을 받은 친박 세력과 또다시 무리지어 무언가 도모한다는 것은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요 조롱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죽어야 할 정치세력이 다시 살아나 ‘좀비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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