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12일 문재인 정부가 ‘안보불감증’에 걸려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과 미국의 상호간 위협이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는데 정작 우리 정부는 아무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6·25전쟁을 언급하며 “모든 위기는 나태하고 취약할 때 오는데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렇다”고 주장했다.

분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이 연일 극단적인 설전을 벌이고 있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찮아 보일 수는 있다. 북한은 미사일로 미국 영토인 괌을 포위 사격하겠다는 엄포를 놓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핵무기는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느니,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느니 같은 말이 오간다.

미국 현지시각 11일,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현명하지 않게 행동한다면 군사적 해법이 준비돼 있으며, 장전이 완료됐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말의 수위만 놓고 보자면 1994년 ‘1차 북한 핵위기’에 맞먹는 위기 상황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양 측의 설전이 오갈 때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진 않았다.

▲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⓵ 정말 전쟁 위기인가?

첫째. AP통신에 따르면 북한과 미국은 날 선 공방을 주고 받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비밀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AP통신은 11일 미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미 국무부의 조셉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박성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이른바 ‘뉴욕 채널’을 가동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들의 접촉은 웜비어 송환 문제 때부터 이어졌으며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사실이라면 양 측의 ‘강경발언’은 일종의 ‘협상전략’일 가능성도 있다. 1994년 ‘1차 북한 핵위기’ 당시에는 양 측이 별다른 대화 없이 미국이 북한 타격계획을 세웠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지금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위기 상황이었다. 양 측의 ‘물밑접촉’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이뤄져 있는지 추가 보도된 바는 없지만 양 측이 대화중이라면 현재의 상황을 ‘극단적 위기’라고 보기만은 어렵다.

둘째. 한반도는 북미 양자 간의 설전만으로 상황을 규정짓기 어렵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반도의 핵 해결 근본 수단은 대화와 담판”이라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은 현지시각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화통화를 했다며 양 측이 “북한이 도발적이고, (긴장을) 고조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백악관은 “두 정상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거듭 밝혔다”면서 “두 정상 간 관계는 매우 가까우며, 바라건대 이는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쟁 위기에 가까워졌다고 보기 어려운 합의다.

▲ 지난 10일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 지난 10일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⓶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코리아패싱’을 주장하며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에서 한국이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했을 때, 정부 여당은 지속적으로 “한미 양국은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정상간 그리고 실무 당국자 간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와 56분 간 통화하며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기조인 ‘대화와 압박의 병행’을 이어가기로 했으며 지난 5일 만장일치로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안의 이행방안을 논의했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12일 논평을 통해 ‘안보불감증’을 주장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전희경 대변인은 “국민들은 이상징후와 한반도 위기설에 불안감에 떨고 있지만, 정부만이 무덤덤하고 평온하다”며 “북한의 괌 포위사격 계획 발표에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반도 위기설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양순필 수석대변인은 12일 논평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외교안보 최고 당국자들의 이런 태도가 의연한 모습을 보여 줘 국민 불안을 잠재우겠다는 뜻이라면 대단한 착각”이라며 “오히려 이런 행태가 국민들 눈에는 ‘안보 불감증’으로 비춰져 불안감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정부가 현재 상황을 위기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만약 정부가 ‘한반도 위기설’을 인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북미간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국민들만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지 않았을까? 사재기와 소비 위축으로 우리 경제가 얻게 될 타격은?

▲ 참여연대평화군축센터 회원들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남.북.미 군사행동 중단과 조건없는 대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CBS 노컷뉴스
▲ 참여연대평화군축센터 회원들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남.북.미 군사행동 중단과 조건없는 대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CBS 노컷뉴스
⓷ 왜 무리한 안보 공세인가?

자유한국당은 연일 북미 간 설전을 부각하며 전쟁위기설을 확산하고 있다. 11일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민경욱 원내부대표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처럼 안일하게 생각하고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니까 대한민국 전체가 안보불감증에 빠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10일 정우택 원내대표는 “우리 국민은 한반도 위기설을 부인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정말로 대단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연일 안보 공세다. 10일 이 신문은 “한반도 정세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서 있다, 재앙이 와있다”며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우리 정부는 존재 자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아예 기명칼럼을 통해 현 정부 중에 북핵이 완성된다거나 문 대통령이 전투명령을 하달할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1야당과 국내 최대 발행부수를 가지고 있는 언론이 전쟁 위기를 떠들며 지속적으로 안보 불안을 조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왜 그럴까?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이 가까워져 왔음에도 70%를 상회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권 초 80% 초중반부터 시작해 조금씩 지지율이 빠졌지만 여전히 70%라면 상당히 높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같은 기간 이명박 전 대통령은 40%대, 박근혜 전 대통령은 50%대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다 할 하락요인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박근혜 정부는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의혹이 피어오르기 시작할 무렵에 100일을 맞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현재까지도 높은 지지율을 근거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굳이 하락요인을 찾자면 ‘안보’다. 리얼미터가 지난 7일 발표한 8월 1주차 주간동향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3주 차 국정수행 지지율(긍정평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잔여 사드 임시 추가 배치’를 둘러싼 정책혼선과 대통령 여름휴가의 적시성 논란이 이어진 주초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으나, ‘8·2 부동산대책’ 발표로 주중부터 반등, 전주 대비 1.5%p 하락한 72.5%(부정평가 20.9%)를 기록했다.

바로 이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69.9%를 기록했다. 상징적 의미의 70%선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이 기간을 끼고 올라 주간 지지율이 1.1%p 상승, 16.5%를 기록했다. 모두 오차범위 내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을 무너뜨려야 하는 야당의 입장에서 기댈 곳이 안보 이슈 밖에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런 식의 야당과 조선일보의 대응이 정말 안보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북미 간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 하라는 요구는 할 수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안보불감증이라고 하면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데프콘을 격상하라는 것인가?”라며 “북이 의도적으로 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여기에 대고 한국정부도 위기라고 맞장구 치는 건 북한 의도에 말려들어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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