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주간지 시사인 구독해지가 줄을 잇고 있다. ‘발화’ 지점은 지난주 467호 표지를 장식한 기획기사 ‘분노한 남자들’이다. 해당 기사는 메갈리아 티셔츠 사태를 계기로 지난 1년 간 나무위키 사이트의 ‘메갈리아’ 항목을 분석했다. 시사인은 “모든 여자들이 미러링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모든 남자들은 미러링에 무차별로 노출된다”며 “이 비대칭은 나는 여자를 혐오하거나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남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시사인은 “워마드에서 등장한 전태일 열사 비하, 안중근 의사 비하, 한국전쟁 사망자 비하 등의 게시물은 커뮤니티 밖으로 퍼져나가 남성혐오의 증거로 즐겨 인용되었고 부당한 탄압의 서사는 분노한 남자들의 전투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분석했으며 “워마드식 혐오 발화만 제거되면 이 분노한 남자들이 현실을 개선하는 데 나설지는 매우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해당 기사는 지난해 시사인 기획기사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에서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확장한 기획이다. 당시 시사인은 메갈리안을 두고 “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로 지칭했다.

▲ 시사인 467호 표지.

이번 기사에 대한 일부 독자들의 격앙 수준은 상상 이상이다. 야당 지지성향 유저들이 모여 있는 ‘오늘의유머’ 게시판에서 한 유저는 시사인 기사를 두고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것을 팩트의 고의적 선별을 통해 왜곡하는 조중동 식 기사였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혐오주의 일베와 맞서왔던 노력은 다 어디 간 것인가”, “일베류 따위를 옹호하는 시사인과 함께할 수 없다”는 댓글도 볼 수 있었다.

구독 해지 규모는 예상을 넘어서고 있다. 고제규 시사인 편집국장은 “기사를 내기 전 예상했던 절독 마지노선을 3단계까지 잡아놨었는데 현재 3단계까지 왔다. 순식간에 빠졌고 예상보다 많이 빠졌다”고 말했다.

‘분노한 남자들’ 기사가 온라인에 풀리기 전부터 시사인 표지사진은 온라인을 떠돌았다. 일부 누리꾼들은 표지 제목을 ‘분노 한남 자들’로 해석하며 메갈리안이 쓰는 용어인 ‘한남’을 시사인이 차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4일과 25일 홈페이지 서버 이전 작업 도중 댓글이 실수로 사라지자 강제 삭제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고제규 편집국장은 “창간이래 댓글을 강제로 삭제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 7월30일자 한겨레 1면.
구독해지와 같은 격한 반발 흐름은 비단 시사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탈당러시’를 경험한 정의당은 메갈리아를 혐오집단으로 규정했다. 한겨레는 여성학자 정희진 칼럼이 7월30일자 토요판에 실린 이후 한겨레 구독을 중지하겠다는 주장이 온라인에 거세게 등장한 뒤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정희진 칼럼을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정희진의 강연회를 준비했다가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것이냐며 수십 명의 후원회원이 후원탈퇴에 나서기도 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우린 정희진 칼럼을 지지한다고 밝힌 적이 없다. 다만 메갈리아에 대해 생각이 다르더라도 읽어보고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은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한겨레와 경향을 왜 비판하지 못하냐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누리꾼들이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추천했다는 것만으로 공격하자 우리도 사안을 다루는 게 불편해졌다”며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냐고 물은 뒤 종북 여부를 판단하는 것처럼, 사회가 하나의 질문을 던져 사상검증을 하는 극단적 태도가 메갈리아 사태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제규 시사인 편집국장은 “독자의 판단은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 뒤 “지금껏 시사인이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구독료에 의존하는 건강한 경영구조를 가진 매체라고 생각했지만 독자들이 한순간에 이탈하는 사태가 터지면서 이 구조 역시 안정적이지 않다고 느끼게 됐다”고 밝혔다. 고제규 편집국장은 “당장의 위기는 허리띠를 졸라매 극복할 수 있지만 당장 후배들이 기획안을 낼 때 자기검열을 할까봐, 그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 시사인 구독해지 관련 '오늘의 유머' 게시판 화면 갈무리.
서민 단국대 교수는 여성신문 기고글에서 이번 절독사태를 두고 “메갈리아를 옹호하지 말라는 남성들의 경고”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시사인이 담당하는 수많은 긍정적인 역할을 생각한다면 절독을 해버리는 속내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는 걸 보면 시사인이 그간 싸워온 ‘반칙을 일삼는 기득권 세력’보다 메갈리아를 훨씬 더 극악무도한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적기도 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뉴스타파의 한 기자는 “특정 사안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고 구독을 중지해버리면 기자들은 자기검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언론이 성역 없이 비판해야 한다는 점을 돌이켜봤을 때 좋지 않은 관행 같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