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 등이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의 수사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태극기 집회 후원금을 모으는 과정과 사용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는데 “촛불집회 모금도 불법이었으니 수사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태극기 집회에 대한 경찰 수사 이후 조선일보는 연일 “촛불 집회와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 1면 ‘태극기 집회 후원한 2만 명… 경찰이 계좌 뒤져봤다’부터 시작해 8일 “촛불 모금도 고발했는데 태극기 모금만 탈탈 털어”, 사설 “촛불 모금은 괜찮고 태극기 모금만 불법인가”에 이르기까지 관련 기사를 연이어 내보내고 있다.

▲ 6일 조선일보 1면.
▲ 6일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검찰·경찰이 촛불은 손을 대지 않고 태극기에 대해서만 팔을 걷어붙이고 수사에 나서 시민 수만명의 계좌까지 들여다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 같은 주장은 ‘물타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후원금 사용처를 실시간으로 공개한 촛불집회와 횡령 논란 등이 제기된 태극기 집회 후원금이 같지 않음에도 이를 동일선상에 놓고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정광용 ‘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이하 탄기국)’ 대변인 등 간부 4명을 기부금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정씨 등 탄기국 간부들이 태극기집회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16년 11월부터 6개월간 전체 모금액 63억여 원 중 25억5000만 원가량을 탄기국 회원이 아닌 이들로부터 불법모금한 뒤, 6억6000만 원가량을 새누리당 대선기탁금이나 새누리당 창당대회 비용 등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기부금품법은 단체가 비회원에게서 연 10억원 이상 모금할 경우 행안부 등에 모금 목적, 방법 등을 등록하도록 하고 있지만 탄기국은 그런 절차가 없었다.

현행법상 탄기국 회원이 아닌 시민에게 후원금을 받으면 불법이다. 조선일보는 이 대목에서 “촛불도 같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는 8일 사설에서 “탄기국과 퇴진행동은 신문 광고로 계좌번호를 알려 입금받거나 집회 현장에서 기부금을 받는 등 모금 방식이 같았다. 태극기 집회 모금이 불법이었다면 촛불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 8일 조선일보 사설.
▲ 8일 조선일보 사설.
여기까지는 조선일보 주장에 크게 무리가 없다. 집회 모금에 있어 회원이 아닌 이들의 후원금을 모은 것은 촛불집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실제 촛불집회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 집행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와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등은 서울중앙지검에 고발 당하기도 했다. 적용 법률은 탄기국과 같은 ‘기부금품법’이다. 탄기국을 고발한 정영모 정의로운시민행동 대표가 촛불집회를 이끈 퇴진행동도 고발한 것이다.

태극기 집회든 촛불 집회든, 후원금을 낸 사람들 중에는 어떤 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시민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문제는 후원금을 회원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받으면 불법이라고 현행 기부금품법이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기부금품법에 ‘독소조항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단체의 정치 성향과는 관련 없이, 보수단체라고해도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은 돈을 불법으로 규정해 처벌하는 것은 기부금품법의 독소조항”이라며 “과잉수사”라고 지적했다.

▲ 태극기 집회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태극기 집회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렇다면 정말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의 수사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걸까. 탄기국 측(이하 편의상 태극기 집회 측)은 기소 됐고, 퇴진행동은 (이하 편의상 촛불집회 측)불기소 됐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등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출발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선일보 주장에는 핵심이 빠져 있다. 

촛불집회 측은 후원금을 받은 내역부터 지출 내역까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공개했다. 지금도 퇴진행동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재정현황보고’를 볼 수 있다. 재정현황보고를 보면 수입은 총 7억8924만8806원이다. 지출은 백서제작, 미디어기록, 기업산업, 법률대응, 장소사용료, 운영비, 선전홍보, 적폐청산투쟁지원, 학술토론 등으로 5억5636만4140원이다. 잔액은 2억3288만4666원이다. 이렇듯 촛불집회 후원금과 지출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

▲ 퇴진행동 측이 공개한 후원금 내역과 지출 내역.  (http://www.bisang2016.net/b/board04/2620)
▲ 퇴진행동 측이 공개한 후원금 내역과 지출 내역.
(http://www.bisang2016.net/b/board04/2620)
반면 태극기 집회와 관련된 후원금을 쓴 내역은 공개돼 있지 않다. 지난 6일 경찰이 밝힌 탄기국 관련 수사내용을 보면 탄기국 간부인 정광용씨가 정치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빼돌린 후원금만 6억6000여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광용씨의 주도 아래 불법 모금한 기부금을 새누리당 대선기탁금이나 창당대회 비용·선거문자 발송비용·입당원서 제작비용 등에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정리하면, 단체 회원이 아닌 시민의 후원금을 받은 것은 태극기 집회나 촛불집회 모두 해당되지만 둘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태극기 집회는 후원금 사용 내역 중 정치자금으로 사용되거나 횡령한 건 등이 있었고 촛불집회 측은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했다는 점이다.

▲ 촛불집회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촛불집회 현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류하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퇴진행동은 국가적 공익을 위한 사회단체인 점, 당시 국민적 요구에 의하여 주최 측은 집회를 계속 진행하기 위해 현장모금이 필요하였던 점, 모금에는 시민들의 적극적 의지가 있었던 점, 모든 기부금 사용내역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자료로 제출한 점이 무혐의를 받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안진걸 사무처장은 “탄기국 관련 수사의 경우, 탄기국 집회를 이끈 간부들이 기부금을 횡령하고, 새누리당 창당대회에 사용했다”며 “단순히 회원이 아닌 시민이 낸 후원금이 문제가 된 것은 비슷한 문제일 수 있지만, 그 후원금을 횡령하고 불법적으로 사용한 것은 탄기국 집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탄기국의 후원금 사용 내용이 불법 정치자금 등으로 쓰였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주장이 ‘물타기’ 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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