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코네리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중세시대 이탈리아의 어느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수도사들의 살인 사건을 다룬다. 사건을 파헤치던 수도사 윌리엄과 연쇄 살인 사건을 일으킨 범인인 노수도사 호르헤가 ‘웃음’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웃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호르헤는 수도원 장서관에 보관된, 인간의 웃음에 대해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을 은폐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에 대해 윌리엄은 웃음은 범부를 악마의 두려움에서 해방시키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지혜’라고 말한다.

웃음은 민중들의 보편적이고 긍정적인 세계관의 표현이다. 현실의 권력에 대한 익살과 해학, 풍자를 통해 짧은 순간이나마 권력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해방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자는 민중들의 웃음을 두려워 하고 억압하려 한다. <장미의 이름>의 배경인 중세시대 유럽의 민중들은 카니발 같은 공간에서 신이나 지배자를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현실의 억압과 삶의 어려움을 극복했다. 비단 중세 유럽뿐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든 권력에 대한 풍자와 해학은 분노와 울분에 찬 삶에 대한 위로이고 권력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이었다. 그렇기에 정치 풍자는 오래전부터 코미디의 주요한 소재이다.

지난 23일 저녁 KBS 2TV에서 방송된 <개그콘서트>의 정치 풍자 개그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용감한 녀석들’ 코너에서 정태호는 “이번에 대통령이 된 박근혜님, 잘 들어. 당신이 얘기했듯이 서민들을 위한 정책, 기업을 위한 정책, 학생들을 위한 정책. 그 수많은 정책들 잘 지키길 바란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절대 하지 마라. 코미디. 코미디는 하지마. 우리가 할 게 없어. 왜 이렇게 웃겨. 국민들 웃기는 건 우리가 할 테니까 나랏일에만 신경 쓰길 바란다. 진짜 웃기고 싶으면 <개콘>에 나와서 웃기던지”라고 발언했다. 이 방송이 나간 직후 <개그콘서트>의 시청자 게시판은 정태호와 <개그콘서트>의 총연출자인 서수민 PD에 대해 차기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부족했다, 편향적이다, 정치하지 말고 개그나 해라라는 등의 비난이 빗발쳤다. 이후 서수민 PD가 “특정 후보(박근혜)를 타겟으로 놓고 한 것이 아니다. 공약과 정책을 잘 지키라는 것이 본질이었다”고 하며 문재인 후보 버전까지 들어가 있는 촬영 원본을 공개했지만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고 심지어 정태호와 서수민 PD의 퇴출, 프로그램의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태호 발언의 내용을 보면 서수민 PD의 말처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비판했다기 보다 새 대통령에게 잘 해달라는 바람을 표현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선거의 공약은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라고 할 만큼 유세 기간에 내걸었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과거의 사례들이 있어왔기에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당부를 새 대통령에게 전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뉴스에서도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나 바람을 말하는 시민 인터뷰를 내보내는데 내용상 이것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한편 정태호의 반말 표현이나 손가락질을 문제삼기도 하지만 이 또한 무례함이 아니라 ‘용감한 녀석들’이란 코너의 기본 콘셉트일 뿐이다.

정태호와 서수민 PD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가장 분노하는 ‘코미디는 하지 마라’는 언급 또한 그리 무례한 발언은 아니다.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어이없는 상황을 보고 흔히들 ‘한 편의 코미디’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표현일 뿐이다. 과거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가 국회의원직을 떠나며 유명한 말을 남기지 않았는가. “코미디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라는.

<개그콘서트>를 비난하고 논란을 벌이는 이들은 막상 개그의 당사자인 박근혜 당선인이나 새누리당이 아니라 그 지지자들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비판은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고, 관객으로서 풍자에 대해 그 질과 수준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비난은 그 범주에 있지 않다. 비난의 본질은 권위주의와 진영논리 즉, ‘감히’ 어떻게 대통령 당선자에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느냐와 ‘좌빨’(이라고 낙인찍은) 연예인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거부감인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논란을 보고 있자니 우리에게도 매카시즘의 광풍이 본격적으로 불어오는게 아닌지 두려워진다. 매카시즘은 미국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기고 오래동안 후유증을 남겼다. 미국에서의 매카시즘은 공화당 안에서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는 세력이 다시 나서고 매카시가 몰락하면서 사라진 낡은 이념이다. 우리도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매카시즘의 바람을 막아줄 우파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엄혹한 시절일수록 웃음은 빛을 발한다. 웃음은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상이 누가 되고 소재가 무엇이 되든 <개그콘서트>의 풍자 코미디는 멈춰서면 안 된다. ‘용감한 녀석들’, 계속해서 너의 용감함을 보여줘.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