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새벽 전라도 지역의 사람과 자연, 문화를 소개하는 '전라도닷컴' 홈페이지가 초토화됐다.

故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을 내걸고 '부활' 했다고 조롱하는 게시물이 올라왔고 전라도닷컴 기사 제목의 주어는 전라도를 비하하는 은어로 쓰이는 '홍어'로 도배됐다. 
 
하루 아침에 전라도닷컴은 전라도를 조롱하며 집단적 광기 현상을 보이고 있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사이트로 변해버렸다. 

전라도닷컴 해킹 사태의 전말이다. 

전라도닷컴이 파악한 해킹 피해 규모를 보면 '세월호 기억하기'라는 이름의 세월호 참사 기획 기사 50건이 삭제됐고, 자유게시판의 제목에는 '홍어'라는 말이 넘쳤다. 메인 메뉴인 독자마당의 하위 카테고리인 ▲내가 찍은 전라도 ▲전라도 동영상 등 하위 카테고리 모두가 삭제돼 창간해인 2000년 이후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해왔던 사진과 글, 동영상 수천여건이 사라졌다. 전라도의 깊은 속살을 들여다본다는 목적으로 만든 콘텐츠들이 송두리째 공중 분해해버린 것이다. 

여러 정황을 보면 이번 해킹 사건은 일베 사이트 회원의 짓일 가능성이 높다. 

전라도닷컴 황풍년 편집장은 독자라고 밝힌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해킹 사실을 전했다고 했는데 실제 일베 회원인 '홍기#####'라는 아이디는 "선의의 의도로 전라도닷컴에 귀 사이트의 관리자 아이디가 해킹 당했으니 알아뒀으면 한다고 통보해줌"이라고 썼다. 

일베 회원들은 또한 전라도닷컴 해킹 사건에 대해 스스로 실토한 내용의 게시물을 올려놓고 있다.

'암##'이라는 아이디의 회원이 전라도닷컴 관리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속한 관리자 모드 화면을 캡쳐한 사진을 처음으로 올렸고, 이후 게시물을 본 다른 일베 회원들이 대거 전라도닷컴으로 몰려와 관리자로 접속해 전라도닷컴 게시물을 수정, 삭제했다는 것이다.

다수의 일베 회원들이 '테러'를 인증하는 게시물을 올리자 일베 운영진은 전라도닷컴과 관련한 게시물을 모두 삭제했다. 전라도닷컴은 지난달 30일 새벽 시간대 관리자 모드로 수천명의 누리꾼이 전라도닷컴을 접속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일베 회원은 최초 전라도닷컴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린 '암##'이라는 회원이 채팅을 통해 "자긴 프록시 써서 고소 안 당하고 패기 넘치게 뻐기는 중"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 일베 사이트에 올라온 전라도닷컴 홈페이지 해킹 캡쳐 사진
 

전라도닷컴은 해킹을 당하고 나흘 뒤인 3일 현재까지도 사이트 복구를 하지 못해 콘텐츠를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전라도닷컴 대문에는 "전라도와 세월호를 표적삼은 사이버테러, 통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지난 8월 30일 새벽 일베 회원들로 추정되는 네티즌들의 해킹으로 수천 건의 기사와 사진, 동영상, 게시판이 삭제되고 기사 곳곳이 홍어 등 전라도를 비하하는 낙서로 도배됐다"는 내용의 공지사항이 올라와 있다. 

전라도닷컴은 "14년간 축적해온 전라도의 귀중한 문화자산이 한꺼번에 불에 타버린 참사와도 같다"며 "응분의 법적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킹 사건은 광주 남부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이 맡았으며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경찰은 일베 회원의 소행으로 추정은 하고 있지만 3일 현재까지도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이버수사팀 관계자는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일베 회원으로 추정은 하고 있지만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단정을 하지 않았다"며 "아직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일베 회원의 소행이라고 할 특정할 만한 단서가 없고 파악이 안 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베 사이트 이외에 다른 사이트도 확인을 해서 비슷한 유형의 게시물이 있는지 자료를 받아봐야 하고 추적을 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사회에서도 이번 해킹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논평을 통해 "이번 사건은 일각의 무리들이 언론사의 편집권을 침탈하고 콘텐츠를 훼손했다는 그 자체로 충격적인 사건인데다,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과 국민들의 상황을 충실하게 보도해온 언론사를 직접 공격하고, 특정 지역과 인물을 비하·혐오하는 발언과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광주지역 ‘세월호 시민상주 모임’에서도 전라도닷컴의 세월호 관련 기획기사들이 집중적으로 삭제됐다는 점에서 대응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전라도닷컴 독자들 역시 이번 사건에 분노해 집단 고소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국장은 "한 지방의 조그마한 잡지사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언론이 이런 일을 당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고 호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 편집국장은 "전라도닷컴은 이 지역 할머니와 할아버지, 마을 공동체를 다루는 것이 주요 콘텐츠이고 자식을 위해 희생해 어렵게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는데 여기에 홍어라는 말로 도배하고 낙서하는 것은 자기네 할아버지, 할머니께 오물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패륜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황 편집국장은 특히 "이번 사태는 철없는 아이들의 일탈로 넘겨도 되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며 "지역 구도 속에서 정치적 이득을 얻고 세월호처럼 특정 사안에 대해 정치적 의견을 달리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배설하듯이 막무가내 논리도 없이 변태적인 행각을 하는 것은 지역을 초월해서 우리 사회가 안된다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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