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검찰이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한다면 전대미문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언론 탄압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5일 오후 검찰이 지난달 28일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단독 보도한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자들이 세계일보 사옥 앞으로 집결했으나 검찰이 부인하고 압수수색 발부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일단 해프닝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28일 청와대는 세계일보 대표이사와 편집국장, 기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세계일보의 특종이 연일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문건을 봤다는 사람이 없어 문건의 출처와 후속 보도에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4일 문건의 작성자로 알려진 청와대 행정관 출신 박관천 경정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바 있다.

지금까지 검찰이 언론사 사옥을 압수수색을 시도한 건 네 차례 뿐이고 그나마 실제로 압수수색에 성공한 건 단 한 차례 뿐이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언론사 압수수색은 유례가 없었다. 초유의 국정 농단 사건을 문건 유출 사건으로 몰아가려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문건의 출처를 밝혀내는 게 절박하겠지만 검찰이 압수수색 카드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배경에는 이런 배경과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1989년 7월 수사요원과 검찰 800여명을 동원해 한겨레 사옥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한겨레는 서경원 평민당 의원의 방북 사건을 보도했는데 검찰은 한겨레 기자가 서 의원의 방북 사실을 정부에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를 적용해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한겨레 기자의 취재 내용을 확보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했고 한겨레가 준항고장까지 제출했으나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고 결국 압수수색을 강행했다.

2003년에는 양길승 사건을 보도한 SBS에 검찰이 압수수색을 시도했다고 실패한 바 있다. SBS는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이 향응을 받는 장면을 몰래 카메라로 제보받아 보도했는데 검찰이 문제의 테이프를 확보하고 제보자의 인터넷 접속 주소를 확인하겠다며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SBS 직원들이 물리력으로 저항해 진입에 실패했다. SBS는 테이프를 임의 제출 형식으로 검찰에 넘겼다.

2007년에는 신동아가 최태민 수사 보고서를 입수해 ‘박근혜 X파일’이라는 기사를 내보낸 것과 관련, 한나라당의 수사 의뢰를 받고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한나라당은 이해찬 전 총리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최태민 수사보고서 형식의 글이 게재되자, 유출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신동아는 자신들이 입수한 자료와 다르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도 기자들이 물리력으로 검찰의 진입을 막았다.

2009년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MBC PD수첩을 상대로 압수수색 시도가 있었으나 역시 실패했다. 검찰은 PD수첩 인터뷰 내용에 의도적으로 누락된 부분이 발견되는 등 보도 내용이 왜곡됐다는 판단 아래 원본 테이프와 방송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과 함께 제작진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 받았으나 노동조합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두 차례 압수수색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

과거 언론사 압수수색 사례와 달리 이번 세계일보 보도는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이 세계일보 보도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검찰이 압수수색을 강행한다면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와 기자 등이 검찰에 피소된 가운데 정작 청와대는 문건의 진위 여부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상태다. 문건 파문의 본질을 외면하고 비판 언론을 탄압하면서 제보자를 색출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과연 이 사건이 압수수색까지 할 만큼 중요하고 심각한 사안인지 의문이고 만약 검찰이 압수수색을 강행한다면 이걸 빌미로 다른 걸 수사하려는 게 아니나는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설령 수사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세계일보 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들에게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언론사 압수수색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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