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약도 없고 치사율이 40퍼센트를 넘는 전염병의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 의사가 대도시 한복판을 활보하면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 문득 몸이 아프고 열이 나는 걸 깨닫고, 병을 의심한다. 서둘러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고, 확진을 받는다. 그러자 언론은 거품을 물고 “무개념” 의사라고 몰아세운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은 혹여라도 자신들에게 책임이 돌아올까봐 그 의사가 돌아다닌 행적을 지도로 상세히 소개하면서 슬그머니 ‘개인의 책임’ 문제를 암시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끌어간다.

그런데 그 사람은 “서울 한 대형병원의 A의사”가 아니라 ‘크레이그 스펜서’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다. 그리고 뉴욕에 거주한다. 뉴욕의 콜럼비아 메디컬 센터에 근무하면서 서아프리카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지자 자원해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몇 개월을 머무르면서 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다 했다. 그리고 뉴욕에 돌아와서 오랜만에 시내를 돌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몸에 고열이 있었고, 자발적 격리에 들어가 동거하는 여자친구도 방에 못들어오게 하면서 구급차를 기다렸다. 확진을 받았고, 에볼라 뉴욕 상륙 뉴스에 굶주렸던 언론의 사냥은 그렇게 시작됐다.

작년 가을, 미국은 극심한 에볼라 바이러스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명이라도 환자가 상륙하면 온국민이 사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다가 첫 환자가 나타났고, 치료 중에 사망했다. 돌보던 간호사들에게도 전염되었고, 서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은 병균덩어리를 보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이런 일이 언론에 몇 주 째 보도되고 있는 와중에 미국에, 그것도 인구 최대 밀집지역인 뉴욕으로 돌아온 그 의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리를 활보하면서 사람들을 만났을까? (심지어 볼링장에도 갔었다. 그 볼링장은 즉각 대대적인 소독을 했지만 끝내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에볼라 바이러스와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람이기에 그 무서움을 잘 안다. 나도 감염된 게 아닐까 두려워 한 밤 중에 식은 땀을 흘리며 잠을 깨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바이러스를 안다. 내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더라도 몸에 열이 나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전파가 불가능하다는 걸 나는 안다” 미국 언론들은 이런 의학적 사실을 몰랐을까? 알고 있었다.

   
▲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공포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 미디어오늘 제휴사 노컷뉴스
 

하지만 시청률이 과학적 사실보다 중요한 TV 펀딧(pundit)들은 24시간 뉴스를 해야 하는 방송사들의 시간을 채워주며 “환자들을 직접 만났던 의사라면 귀국 후 최대 잠복기인 21일 동안 집 안에서 자발적 격리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성토했다. 솔직히 자백하면, 필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화가 났었다. 하필 아내가 같은 병원에 근무한다는 것 때문에 공포와 분노는 더욱 개인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렇게 뉴욕은 공포에 빠져들어 갔다.

인류학자들은 그런 공포가 인류에게는 자연스런 반응이라고 말한다. 그런 무분별한 공포가 근육도 약하고, 이빨도 뭉툭한 인류를 각종 위험 속에서 이제껏 생존시켜 왔다는 것이다. 잘 모르는 위험이 있을 때 최악의 경우를 생각했다가 틀리는 것(false positive: 거짓양성)이, 위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틀리는 것(false negative:거짓음성) 보다 치러야 할 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인류가 맹수들과 함께 사바나를 거닐던 시절에 얻어진 버릇이라는 것이다. 철저한 의학적 지식에 기반한 위생시설과 질병관리가 없이는 수 백, 수 천만의 사람들이 그렇게 좁은 공간에 생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상륙하면 인간의 뇌는 사바나 시절로 되돌아간다.

A의사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그 환자를 진료한 것도 아니고, 다른 환자의 매개를 통해 감염되었으며, 증상이 나타나자마자 따라야 할 모든 프로토콜을 지켰다고 이야기했다. 그 의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의사는 할 일을 한 사람이다. 프로토콜이 없는 정부와 있어도 지키지 않는 부서들을 생각하면, 해야 할 일을 한 개인은 방향을 잃은 성난 여론으로 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미국 이야기로 돌아가면, 작년 가을의 그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두 명의 정치인이 돋보였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가 완치가 된 간호사 두 명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기자들 앞에서 포옹을 하는 퍼포먼스(?)를 한 오바마 대통령과, 뉴욕, 뉴저지 주지사가 여론에 편승해 스펜서의 행동을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중에도 끝까지 감정적인 대응을 거부하고 침착하게 대응했던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이 그들이다. 그런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흥분했던 여론은 돌아서기 시작했고,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책임감 강한 언론들은 그 의사의 헌신적인 노력을 보도하며 그의 명예회복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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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이미 오래 전에 사바나를 떠나 도시를 만들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살기 위해 수 천 년에 걸쳐 정부(시스템)를 만들고 다듬어왔다. 그러나 우리의 뇌의 한 구석에는 동물적인 공포가 여전히 살아남아 있고, 위협을 느끼면 언제든지 튀어나와 우리의 생각을 주도한다. 그런 동물적인 공포를 눌러줄 수 있는 것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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