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대학생의 패션을 비교한 기사에서 당사자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사진을 내보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8일 한국일보는 “두 정거장 차인데 패션은 ‘극과 극’” 기사를 통해 고려대 학생들과 동덕여대 학생들의 옷차림을 비교했다. 몰카(몰래카메라) 방식으로 찍힌 이 사진 기획은 한국일보의 디지털뉴스부에서 제작한 ‘패션온도차’ 시리즈의 세 번째 기사다. 지역·시기·상황별 옷차림 차이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온라인 연재물이다.  

해당 기사가 나간 후 사진의 대상이 된 동덕여대와 고려대 학생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당사자 동의 없는 몰카 촬영에 대해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전자 우편을 보내거나 항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학교에 기자들이 들어와서 허락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는 게 너무 기분이 나쁘다”는 글이 올라왔고 많은 학생들이 공감을 표했다.  

기사를 작성한 한국일보 기자는 한 학생이 보낸 항의 메일에 대한 답신에서 “기사 속 사진의 당사자로서 우리 의도와는 다르게 피해를 입으신 점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셔터를 누르기 전 먼저 동의를 구하고 촬영하는 것이 도리인 줄은 알고 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점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메일 전문은 커뮤니티 페이지 등에 공개돼 있다.

   
▲지난 8일 한국일보의 <두 정거장 차인데 패션은 ‘극과 극’> 기사 화면 갈무리. 이 기사는 대학생들의 동의를 받지않고 기사에 게재해 학생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사진=한국일보닷컴
 

이번 한국일보의 기사는 △얼굴이 나오지 않은 사진은 초상권 침해가 아닌지 △수많은 취재원에게 일일이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기사에 대한 기자의 책임은 어디까지 인지 △공익을 위해 사생활 침해는 어디까지 허용되는지와 같은 질문을 남겼다.

1. 얼굴이 나오지 않았으면 초상권 침해가 아니다?

한 동덕여대 학생은 커뮤니티에 이 기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초상권 침해로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주장했다. 초상권 침해는 얼굴 포함 신체적 특징에 대하여 갖는 인격적·재산적 이익 침해로 얼굴이나 본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특징을 함부로 촬영하거나 공표되지 않을 권리 침해로 신고하면 정정 보도를 하게 돼 있고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일보는 기사에서 학생들의 사진을 올리며 얼굴 부분은 가렸다. 옷차림을 비교하는 기사인 만큼 목 아래 부분부터의 모습만 실었다. 이 때문에 한국일보 측은 기사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기사에 실린 대학생들의 옷차림 사진.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옷차림과 체형으로 본인과 주변 사람들은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다. 사진=한국일보닷컴
 

이에 대해 한 언론분야 전문 변호사는 “딱 잘라 초상권 침해다, 아니다를 판단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초상권이 말하는 신체적인 특징은 옷차림이라기보다 개인이 가진 신체적인 특징을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기사 사진에 체형 같은 것을 알아볼 수 있으니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기사 자체가 오보를 하거나 사실을 틀리게 말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적 문제에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초상권은 얼굴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고 얼굴을 가렸다 하더라도 차림새나 신체적 특성 등 사람을 누군지 알아볼 수 있다면 초상권의 범주에 있다”며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에선 얼굴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골키퍼를 뒤에서 찍은 사진의 옷차림과 몸동작을 보고 본인과 주변 친구들은 누군지 알 수 있었기에 초상권 침해라고 결론이 났다”고 설명했다.

2. 수백 명의 취재원에게 일일이 동의를 받아야 할까?
한국일보에 따르면 이 기사는 이틀 동안 두 학교에서 각각 200여 명씩 총 400여 명의 학생들 사진을 찍었다. 한국일보는 사진을 찍으면서 학교 측의 동의를 받지 않았으며 학생들도 일부에게만 동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연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국일보가 취재를 하러왔을 때 학교 측에 동의를 구했으나 학교가 이를 거부했다”며 “학교가 거부하자 한국일보는 교내가 아닌 정문 밖에서 학생들의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일보는 고대 측에도 촬영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최진주 한국일보 디지털뉴스팀장은 “100%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동의를 받은 사람에게는 사진을 찍고 인터뷰도 했다”며 “모든 사람의 허락을 받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일보는 지난 3일과 4일 이틀동안 각각 200여명을 촬영한 뒤 옷차림을 분석했다. 사진=한국일보닷컴
 

취재윤리는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통할 수 있을까. 심석태 SBS 뉴미디어부의 부장은 “동의가 필요하면 열 명이든 백 명이든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일부 동의를 받았다는 것은 이미 동의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말인데, 왜 나머지는 동의를 받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김창룡 교수는 “법적인 문제에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취재 윤리의 문제에서는 논란이 없다”며 “취재원에게 허락을 일일이 얻어야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중의 무리를 찍거나 누군지 모를 정도로 처리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나 친구가 알아볼 정도로 취재원의 사진을 사용했다면 일일이 동의를 구했어야 했다”며 “특히 보도가 나간 후 취재원들이 반발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사전에 미리 고지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 부장은 “군중 촬영과 같이 풍경으로서의 촬영이었다면 일일이 동의를 받기 어렵다는 말이 통할 수 있지만, 이 경우는 개인의 특징을 부각해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동의가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며 “동의가 어려웠다면 이후에 사진을 그대로 쓰지 않고 그래픽화해서 내보내는 방법을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기자협회는 인권보도준칙에서 “공인이 아닌 개인의 얼굴, 성명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하려면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3. 기사에 대한 기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한국일보의 기사가 나간 후 문제를 더 크게 만든 것은 포털 사이트의 댓글이었다. 포털 사이트에 해당 기사가 올라가자 악성 댓글들이 달렸다. 여기에는 사진에 찍힌 여성들의 외모와 옷차림을 평가하고 비하하는 글이 대다수였다. 대학 서열의 잣대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특정 학교를 폄하하는 댓글도 있었다.

악성 댓글이 달린 부분에 대해서 한국일보는 “이 기사가 포털에 노출됨으로써 부정확한 정보가 가미됐고 사실과 다른 부분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우리 견해와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일부 해석된 측면이 있었다”며 “하지만 우리가 이 부분까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까지 언론사가 책임질 수 없다는 주장이지만 논란이 커지자 한국일보는 지난 9일 포털 사이트에서 해당 기사를 내렸다. 한국일보닷컴 사이트에는 아직 기사가 남아 있다. 

   
▲논란이 커지자 한국일보는 지난 9일 포털 사이트에서 해당 기사를 내렸다.
 

최진주 팀장은 “포털에는 기사 내용과는 무관한 비하성 댓글이 달려 학생들이 상처를 받은 것을 보고 기사를 내렸다”며 “법적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창룡 교수는 “기사의 의도와 상관없이 취재원들이 피해를 입었다면 기사를 내려야 한다”며 “포털에서 기사를 내렸다는 것은 일부 책임을 공감한다는 것인데 이왕 내릴 것이면 모든 기사를 다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원인을 제공한 측에서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선의라고 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4. 개인의 사생활 침해 VS 공익적 가치
한국일보는 학생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사진을 찍은 점은 유감이나 기획 의도가 공익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해 취재했다는 입장이다. 

한국일보는 동덕여대 학생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 기사의 기획 의도나 방향은 명확하다”며 “구성원이 입은 어떤 옷이 어떤 시대상과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역사를 기록하는 매우 가치 있는 부분으로 그 자체로 공익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한국일보의 기사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면서까지 보도해야할 공익적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종헌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학생회장은 “시리즈 기사 모두를 봤는데 첫 번째 기사는 직종별 옷차림을 비교한 것이니까 유의미한 비교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학교에는 특별한 제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며 “만약 공익성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보다 학교 학생들에게 준 피해가 더 컸던 보도였다”고 비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학생들을 옷차림으로 비교하는 것, 사람의 외향으로 평가를 하게 만드는 것부터가 독자들 눈길을 끌기 위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언론이 사생활의 피해를 주면서까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도해야 할 대상은 고위 공무원에 관한 소식이나 범죄를 보도할 경우 정도다”며 “범죄 현장같이 사생활이 침해되더라도 공익을 위해 꼭 보도해야 할 경우도 있지만 이번 기사는 평범한 학생들이 길을 가는 것을 몰래 찍어 보낸 것이고, 공인이 아닌 개인에게 공익을 위해 사생활 침해를 감수하라는 방식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5. 남학생들에게 잘 보이려고? 남성 중심적 시선
기사는 고려대와 동덕여대 여학생들의 패션을 비교하는 사진 설명으로 “남학생과 함께 공부하는 자연계 캠퍼스에서 볼 수 있는 여대생 모습(왼쪽)과 여학생만 있는 여대 캠퍼스의 여대생 모습은 차이가 있다”고 썼다. 또 한 학생의 말을 인용하며 “남녀가 함께 다니는 학교는 남학생의 시선에 영향을 받지 않겠냐”며 “여자만의 기준과는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기사의 결론은 “고대 자연계 캠퍼스 여대생들은 ‘평범함’을 추구했고 분위기는 침착했다. 동덕여대는 ‘과감함’을 추구하는 학생들이 분위기를 이끌었고 에너지가 넘쳤다”로 끝났다. 여성의 옷차림이 남성의 시선이 미치느냐 미치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동덕여대 12학번 이나현씨는 인터넷 블로그에 ‘난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입는 게 아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양 대학을 ‘평범한’, ‘독특한’ 이 두 가지 수식어로 일반화 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며 “더군다나 이 기준이 ‘남자가 있고 없고’라니 황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블로그에서 쓴 글과 같은 내용의 메일을 한국일보 기자에게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해 그 메일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사진이 찍힌 학우들만의 문제라기보다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 위에서 쓴 기사라고 생각해 당사자는 아니지만 항의 메일을 보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