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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언론탄압보다 무서운 대만 미디어의 PPL

[양첸하오 칼럼] 대만의 정부 PPL 열풍에 기자 떠나고 탐사보도 무너져… 언론·시민단체와 학계가 분투했지만

2015년 10월 25일(일)
양첸하오 BBC 중국어판 객원기자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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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첸하오 BBC 중국어판 객원기자가 대만의 PPL 뉴스 실태를 소개합니다. 이 칼럼은 3회 연속 칼럼 가운데 마지막 편입니다. 편집자 주)

대만 언론이 정부의 돈을 받고 기사를 쓰는 PPL 현상은 보급화 단계에서 이제는 일상화 단계에 이르렀다. 미국 프리덤하우스는 지난 2011년 ‘세계언론자유보고서’에서 “PPL 뉴스는 대만의 언론 자유가 후퇴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만의 신문·방송학자들이 기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PPL 뉴스는 업무에 대한 언론인의 열정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PPL 행위를 견디지 못해 언론계를 떠난 대만 기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필자의 모교에서 신문학을 가르친 한 지방 신문사의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진당이 정권을 교체한 후 언론 개입이 개선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는 뜻밖에 PPL 카드를 내놨다. 기사를 노골적으로 통제하던 계엄 시절보다 저항하기 더 어렵다. 스트레스가 매우 컸으며 떠날 수밖에 없었다.”

PPL 현상은 신문방송학 전공 학생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신방학과 학과장인 한 교수가 수업 중 학생들에게 “PPL 뉴스를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80%의 학생들이 손을 들고 ‘동의한다’고 했다.  

   
▲ PPL뉴스에 반대하며 16년 동안 근무하던 중국시보(中國時報)를 떠난 황저빈(黃哲斌) 기자. 오른쪽 사진은 중국시보 1면. (사진TAZZE)
 

2010년 연말 탐사보도로 유명한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의 황저빈(黃哲斌) 기자가 신문사에 만연한 PPL을 참지 못하고 “대만 신문 산업에서 PPL 뉴스는 세계적 추세보다 훨씬 앞서 있다. 뉴스에 대한 인식이 매우 뒤떨어지는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사직서를 제출하고 16년 동안 일하던 직장을 떠났다. 

70~90년대 후반 중국시보는 발매 부수 2위 신문사였을 정도로 중화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신문이었다. 창간 당시 회장은 국민당 중앙상임위원이었고, 중국시보는 친(親) 국민당 성향 언론으로 분류됐지만 고품질과 깊이 있는 기사로 인정을 받았고, 계엄 시절 국민당 정부를 여러 번 비판하며 당 외 민주화 세력에게 더 많은 발언 기회를 줘 대만 지식층이 제일 존경하고 선호하는 신문사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 민진당 정부가 PPL 정책을 선언하자 중국시보는 당시 행정원장(총리)을 강력 비판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중국시보가 경영난에 빠지고 대만 최고 부호가 2008년 중국시보를 인수한 뒤 보도 성향과 입장에 큰 변화가 생겼다. 노선이 ‘친공’(親共)(친 공산당)으로 전환했을 뿐 아니라 대만 정부와 중국 지방정부의 자금을 받고 PPL뉴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황저빈 기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신문지면은 PPL뉴스에 잠기고 침식됐다. 뉴스는 가격을 논의해야 하는 상품이 됐다. 홍보 문안을 일일이 데스크에 보내오고, 언론사 간부가 ‘PPL 때문에 글귀 하나도 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기자들이 열심히 취재하고 준비한 기사가 막히고 일부 기자와 간부들은 심지어 업무 쿼터를 배분한다. 뻔뻔스럽게 취재 대상이 예산을 요청해온다”고 말했다. “정부와 대기업이 직접 데스크에 손을 뻗어 기사 내용을 지정하고, 편집부 회의는 도덕을 그르친 ‘가면 댄싱파티’가 됐다”는 토로였다. 황저빈의 사직서와 성명은 대만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황저빈 사건 때문에 신문방송 학자들은 대만기자협회와 언론단체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벌였다. 국립 대만대학교를 포함한 전국 신문방송 관련 학과와 신방학자 131명이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적으로 정부의 PPL 행위를 반대했다. 언론 자율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 대만의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1년 1월 대만기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PPL 뉴스를 규탄했다. 이들이 들고 있는 팻말에 적힌 ‘收買新聞’ 반대는 뉴스 수매, 즉 PPL 반대를 뜻한다. 業配新聞라는 말은 PPL뉴스를 뜻하며 文建會 등은 대만 정부 부서의 이름이다. (사진:공민국회감독연맹)
 

신문방송학계의 분노는 마잉주(馬英九) 총통을 크게 놀라게 했다. 당정회의에서 정부의 PPL행위 금지를 선포했고, 언론에서 하는 정책 홍보는 ‘광고’라고 표기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2달 후에 여야는 정부기관, 공영사업 그리고 정부출자나 기부를 통해 설립된 법인단체의 PPL을 할 수 없다는 금지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당시 서명운동의 발기인이었던 린리웬(林麗雲) 대만대 신문정파대학원 교수는 “신문방송학계가 주도했던 운동 가운데 가장 성공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입법을 통해 정부의 PPL행위는 금지됐다. 하지만 일반 상업형 PPL뉴스는 그대로다. 아직까지 권력의 언론 매매행위를 검거하고 조사하는 감독 시스템은 없다. 특히 중국정부가 발주하는 PPL뉴스에 대한 방비(防備)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이 기사와 보도를 볼 때는 경계심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보는 뉴스는 권력이 돈을 내고 만든 ‘뉴스’일 수 있다.  

대만의 정부 PPL 뉴스 (上) : <정부가 뉴스 하나 사면, 방송사는 하나 더 얹어준다>
대만의 정부 PPL 뉴스 (中) : <
돈 주고 뉴스 살 수 있다면 언론이 무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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