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디어교육을 교육현장에 전격적으로 도입하려 한다. 산업적 위기를 겪는 언론 입장에서도 미디어 리터러시는 위기의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체계적으로 준비되지 않았으며 정치사회 교육과도 단절돼 있다. 미디어오늘은 프랑스, 핀란드, 영국 등 미디어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시하는 국가의 미디어교육 현황을 돌아보고 발전적인 미디어교육을 위한 제언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두 명의 학생이 등장한다. 이들은 소시지의 맛을 본다. 맛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소시지를 구우며 행인들과 눈인사를 하는 사람이 보인다. 그는 핀란드 헬싱키지역 국회의원 후보다. 핀란드에서는 국회의원 선거운동 때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에게 소시지를 나눠준다. 학생들은 그에게 묻는다. “청소년을 위해 어떤 정책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핀란드 반타 지역의 티꾸릴라(Tikkurila) 고등학교 학생들이 사회정치수업에서 제작한 영상 ‘누구의 소시지가 가장 맛있나’다. 이 질문은 누구의 정책이 가장 매력적인지 묻는 것이다.

‘통합교과’ 통한 미디어 리터러시

사회정치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이지만 강의실에서 책을 펴는 대신 거리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사회정치 현안을 미디어 제작 방식을 통해 배운 것이다. 이 수업은 일종의 ‘통합교과’다. 핀란드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통합교과를 권장하고 있다. 각 수업에서 다루는 분야가 별개의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연계되고, 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교육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핀란드 정부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정규교과에 편성하지는 않았지만, 일반 교과목에 접목할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정하고 있다. 

티꾸릴라 고등학교에서는 미디어를 ‘통합교과’에 적극적으로 응용하고 있었다. 음악 과목을 듣는 학생들과 영화 과목을 듣는 학생들이 협업해 공포영화를 제작했다. 영화 과목에서는 3명의 이민자 출신 학생들이 제작한 자전적 다큐멘터리가 DVD로 출시되기도 했다. 국어(핀란드어) 수업에서는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작품을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과제가 나온다.

   
▲ 사회정치 수업을 듣는 티꾸릴라 고등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영상 '누구의 소시지가 가장 맛있나'. 미디어와 사회정치를 접목한 통합교과 수업이다.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이해도 이론이 아니라 몸소 체험하며 배운다. 저널리즘 인문학수업에서는 ‘학교 이미지를 실추하는 콘텐츠 제작하기’ 과제가 주어졌다. 학생들은 학교에 쓰레기를 합성하고, 저질스러운 음식을 학교급식이라고 왜곡한다. 이 수업에서는 사실과 다른 기사, 인종차별적 내용이 들어간 기사를 보여주며 무엇이 문제인지 토론하게 한다. 안티 팬티쾨이넨(Antti Pentikäinen)미디어 담당 교사는 “학생들이 인터넷에서 수많은 콘텐츠를 보는데, 속고 속이는 게 얼마나 쉬운지 직접 경험하게 하는 차원의 교육”이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수업에서는 뉴질랜드에서 제작한 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틀어주고 학생들에게 해당 사안에 대해 토론하게 했다. 교사는 “이걸 왜 보여주는지 맞추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정답을 맞추지 못하자 교사는 다큐에서 다루는 내용이 가짜임을 밝히며 “내가 교사라고 해서 신뢰하지 마라. 모든 정보가 사실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스스로 능력을 길러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핀란드는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교사의 재량권이 크기 때문에 세부적인 교육법은 교사가 정한다. 아리 란키(Ari Ranki) 티꾸릴라 고등학교 교장은 “대신 모든 수업에서 교사들이 미디어를 활용하도록 권장하고 있고, 핀란드 초중등 과정에서 대부분의 교사가 미디어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별도로 교육하고 있지 않냐는 질문에 안티 팬티쾨이넨씨는 “좁은 개념에서 뉴스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교육도 미디어 리터러시지만, 크게 보면 미디어를 능동적으로 활용해 공부하고, 콘텐츠를 제작해 시민으로서 표현의 수단을 확장하는 것도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말했다.

누구나 어디에서든 ‘미디어 교육’ 받는다

이 같은 교육도 비단 학생들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핀란드에서 교육은 ‘모두를 위한 복지’이기 때문이다. 핀란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방과후 학생, 취약계층, 어린이와 중장년층 등을 대상으로 보편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공공도서관과 청소년센터를 설립했다. 

핀란드에서 공공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고 대여하는 공간이 아닌 영화DVD, 음반, 신문잡지, 방송 등 정보를 담은 미디어 교육공간이다. 남녀노소 모두를 대상으로 하지만 보통 미취학아동과 은퇴 세대인 중장년층이 주로 도서관을 찾는다. 지난 4일 헬싱키에 위치한 타피올라(Tapiola)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3D프린터를 이용하는 아이였다. 그는 캐릭터 모형 설계도를 입력하고는 스마트폰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 편 컴퓨터에서는 한 할머니가 페이스북을 하고 있었다. 

   
▲ 타피올라 도서관의 미디어 교육 현장. 핀란드는 공공도서관을 통해 어린이,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미디어 및 문화교육을 실시한다. 사진=타피올라 도서관 제공.
 

핀란드 도서관의 미디어 교육은 도서관 재량이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미디어 기기를 활용한 교육을 보편적으로 하고 있다. 한국인 출신 이민자로 이 도서관의 보조사서 역할을 하고 있는 김준호씨는 “지역 유치원과 연계해서 동화를 읽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소셜미디어 활용 교육, 코딩교육, 3D프린터 교육 등을 실시한다”면서 “학교에 진학하기 이전 어린이, 자녀를 출가시킨 후 사는 중장년층을 위한 정보활용교육이 주를 이룬다”고 말했다.

지역마다 위치한 청소년센터도 중요한 사회미디어 교육 장소다. 5~29세라면 핀란드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무료로 문화·미디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청소년센터는 헬싱키에 위치한 하피청소년센터(Youth centre Happi)다. 이 센터는 신문, 방송, 음악, 라디오, 사진 등 장르별로 별도의 제작공간이 마련돼 있다. 하루 방문자수는 100~150명 정도이고 직원이 70명 가량이다.

청소년센터라고 해서 한국의 청소년센터를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와 달리 실제 방송국처럼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영상 스튜디오는 3D 촬영을 할 수 있는 스크린이 설치돼 있으며, 라디오 부스 역시 일반 라디오 녹음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라디오에는 할당된 주파수가 있어서 방송도 가능하다. 인프라만 놓고 보면 한국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만든 시청자미디어센터도 부족한 수준은 아니지만 핀란드는 분야별 전문가가 상주해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3층에 위치한 신문반 섹션에 들어서자 한쪽 벽이 헬싱키신문(Helsingin sanomat) 기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지역인물들을 인터뷰한 기사인데 모두 청소년들이 만든 기사다. 하피청소년센터(Youth centre Happi) 자원봉사자인 예리(Jere)씨는 “신문반의 경우 헬싱키신문(Helsingin sanomat)에 청소년들이 지역 인물을 인터뷰하는 코너가 별도로 있고, 2명의 언론인 출신 멘토가 상주하며 관련 교육을 맡는다”고 말했다.

   
▲ 핀란드 헬싱키에 위치한 하피 청소년센터. 핀란드의 청소년센터에서는 신문, 방송, 사진, 음악 등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센터와 달리 실제 방송국처럼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며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상주하면서 청소년 교육을 실시한다. 사진=금준경 기자.
 

미디어교육 이끈 ‘민-관’ 협력모델

핀란드 교육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이뤄질 수 있는 배경은 정부와 시민사회, 기업 등이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 미디어 교육은 정부기관인 국립시청각센터(Kansallinen Audiovisuaalnen instituutti)와 시민단체인 핀란드미디어교육협회(Finnish Society on Media Education)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들 기관은 미디어 교육 전반의 목표를 설정하고 다양한 교육법을 학교와 공공도서관, 사회적인 미디어 교육기관에 공유해 전체 미디어교육이 하나의 체계 속에서 굴러가도록 한다. 기관별로 각기 다른 목적의 미디어 교육을 실시하는 우리나라와 차이가 크다.

학계는 미디어교육법을 연구하고 커리큘럼을 점검한다. 오울루대학은 국립시청각센터와 함께 미디어교육 커리큘럼 자료를 분석하고 제언하는 역할을 해왔다. 헬싱키대학에서는 최근 5년동안 옴니스쿨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6~10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교육을 체험학습과 접목시키는 교육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언론과 기업도 자발적으로 나선다. 옴니스쿨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스마트폰 GPS를 이용한 체험 애플리케이션인 ‘스마트핏(Smart feet)’을 개발했으며 핀란드 공영방송 YLE(윌레), 헬싱키신문(Helsingin sanomat), 스타트업 기업들이 함께 만든 뉴스해설 앱 ‘트리플렛(Triplet)’도 있다. 이 앱은 매일 저녁  YLE(윌레)의 메인뉴스를 학생 연령에 따라 다르게 제공하고, 실제 교사가 뉴스와 관련된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는 내용이다.  

   
▲ 핀란드의 미디어 교육 체계. 핀란드는 정부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학교, 공공도서관, 청소년센터, 언론과 유기적으로 협력해 미디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종이신문 읽으라고? 이제는 ‘멀티 리터러시’

핀란드는 가장 먼저 미디어교육을 시작한 국가이자 가장 많은 시도를 한 국가다. 그리고 가장 먼저 디지털 환경에 걸맞는 미디어 교육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시하기도 했다. 1950년 핀란드에서 처음 NIE(신문활용교육)가 도입 됐을 때는 비판적 신문 읽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핀란드 현지에서 신문활용교육을 더는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 안티 팬티쾨이넨(Antti Pentikäinen) 교사는 “원래 기사쓰기 교육을 했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올해부터는 블로그 글쓰기 교육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신문읽기 수업에서도 이제 종이신문만 취급하지 않는다. 블로그의 글이든 인터넷 게시물이든 좋은 콘텐츠라면 그걸 읽게 하고, 수업교재로 활용한다. 

   
▲ 스마트폰과 PC사용이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미디어를 활용한 교육의 중요성은 크다. 사진=타피올라 도서관 제공.
 

2016년부터 핀란드는 통합교육과정에 ‘멀티 리터러시’를 의무적으로 가르치게 된다. 이사벨라 홀름(Isabella holm) 핀란드미디어교육협회 매니저는 “핀란드는 내년부터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대신 ‘멀티 리터러시’ 교육이 학교 커리큘럼에 들어간다”면서 “이제 과거처럼 1~2개의 플랫폼만 갖고 미디어를 말할 수 없다. 변화한 환경에 맞춘 개념”이라고 말했다. 내년 8월부터 새로운 교육과정이 시작되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코딩이 필수과목이 된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PC 등 디지털로 콘텐츠를 소비해온 현재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수업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이기도 하다. 옴니스쿨 프로젝트 담당자인 헬싱키대학 올리 베스테리넨(Olli Vesterinen)박사는 “핀란드에서도 변화하지 않으려는 교사들이 있지만, 분명한 건 선택해야 할 때라는 점이다. 언제까지 19세기 학교로 남아있을 것인가. 디지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생활하는 아이에게 책을 통한 교육은 더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기획취재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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