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일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카메라를 옮겨 놓고, 조명을 설치하고, 화면 안에 등장하는 것 무엇 하나 잘못된 것이 없나 살피고, 점심메뉴로 괜찮은 것을 고민 하는 일입니다. 촬영장소를 섭외하러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니고 섭외하기 위해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고, 졸린 눈 비벼 가며 운전대를 잡는 일이며 내일 촬영을 위해 새벽까지 준비하다 두 눈이 벌게진 채 현장에 나오게 되는 일입니다. 

한 컷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며, 기껏 기다렸으나 오늘 못 찍게 됐다는 말을 듣게 되는 일이고 그러한 말을 전하게 되는 일입니다. 흔히 말하는 ‘좋은 영화’라는 관념 역시 이러한 노동으로 구체화됩니다. ‘아버지의 전쟁’도 마찬가지로 ‘좋은 영화’를 만들려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좋은 영화로 기억되기 위해선 좋은 노동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결국, 영화는 노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현장에서 함께 했던 스태프들은 그 대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노동의 대가는 반드시 지급되어야 합니다.”

18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영화 ‘아버지의 전쟁’ 스태프 및 배우 임금체불 소송청구 기자회견에서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영화 제작사와 투자사의 임금체불 사건 해결을 촉구하며 한 말이다.

▲ 1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영화 '아버지의 전쟁' 스태프 및 배우 임금체불 소송청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 1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영화 '아버지의 전쟁' 스태프 및 배우 임금체불 소송청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영화 ‘아버지의 전쟁’은 1998년 판문점에서 사망한 고 김훈 중위의 의문사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5년의 기획개발을 거쳐 지난 2월 촬영을 시작했으나 4월13일 제작이 중단됐다. 2달여간 촬영에 임했던 스태프 및 조단역 배우들은 갑작스런 촬영중단 통보를 받게 됐고, 곧 재개되리라 믿었던 촬영은 결국 중단됐다.

이에 스태프들과 조단역배우들은 제작사 ‘무비엔진’에 밀린 임금의 지급을 요구했다. 그러나 제작사는 오히려 투자사인 ‘우성엔터테인먼트’가 촬영을 중단시키고 예산집행을 중단하여 임금체불이 발생한 것이라며 임금체불의 책임이 투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버지와 전쟁’에서 스태프와 조단역배우가 아닌 주연배우(영화배우 한석규 등)들은 임금을 지불받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영화 투자자인 우성엔터테인먼트는 촬영이 23회 진행되던 중 제작사의 심각한 계약위반 사항으로 제작비 지급을 중단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우성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3일 공식입장을 통해 “제작비 지급을 중단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작사가 실화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본 영화 당사자인 고 김훈 중위 유족의 제작 동의를 받지 못하였다는 점”이라며 “유족의 동의 없이 영화를 강행시키는 것은 추후 관객의 공감을 살 어떠한 명분도 실익도 없다고 판단하여 촬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연대발언을 한 손아람 작가는 현재 상황이 제작사와 투자사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결국 스태프와 조단역 배우들에 대한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아람 작가는 “한국 영화에 관객 천만명이 들면, 영화 제작사와 투자사가 큰 돈을 번다”며 “그러나 예산상의 문제가 생기면, 스태프들이 그 손해를 다 감수한다”고 말했다. 이어 손 작가는 “영화사와 투자사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스태프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고, 이 사태에서 유일하게 책임이 없는 스태프들이 영화 제작 중단의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건 단지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한국 영화 산업의 근간을 붕괴시키는 행동이다. 영화산업은 이런 식으로 유지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네이버 영화 '아버지의 전쟁' 설명 화면.
▲ 네이버 영화 '아버지의 전쟁' 설명 화면.
이날 기자회견에서 영화 ‘아버지의 전쟁’ 스태프 및 배우들은 제작사 ‘무비엔진’에 △근로시간, 연장근로 등 노동법을 위반한 점 △스태프와 단역배우들에게 제대로 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점 △투자자에게 영화 예산을 지급받고 불투명하게 예산을 운영한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투자자인 ‘우성엔터테인먼트’에도 투자금의 사용을 관리하고 회계처리할 의무가 있음에도 의무를 방기한 점, ‘프로덕션 슈퍼바이저’를 파견해 스태프와 출연진의 임금지급을 관리감독하고 직접 임금을 지불하는 등 통상 영화 투자사들이 수행한 책무를 저버린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 제작사와 투자사는 스태프와 단역배우들 촬영이 중단됐기에 임금을 삭감해서 받겠다는 합의문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전쟁’의 한 스태프는 미디어오늘에 “중간에 촬영이 중단되면서 스태프들이 임금을 60~70% 삭감해서 받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는데도, 그것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전쟁’ 스태프와 배우들은 제작사 무비엔진과 투자사 우성엔터테인먼트가 협의해 스태프와 단역배우들의 임금을 지급할 것과 사태재발을 막기 위해 앞으로 표준계약서를 사용할 것을 촉구했다.

‘아버지의 전쟁’ 스태프 및 배우 임금체불 문제해결을 위한 연대모임 측은 제작사와 투자사를 상대로 임금체불반환 청구소송 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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