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7일 재심의를 통해 KBS의 김경록 인터뷰 보도 제재 수위를 2단계 낮췄다.

방통심의위(위원장 강상현)는 이날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조국 전 장관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자산관리인 김경록 한국투자증권 PB를 인터뷰했다가 왜곡 논란을 부른 지난해 9월 KBS ‘뉴스9’ 보도가 방송심의규정 ‘객관성’ 조항을 위반했는지 재심의했다. 재심의 결과 제재 수위는 법정제재 ‘주의’로 감경됐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2월 전체회의를 통해 법정제재 ‘관계자 징계’를 의결했다. 이 같은 관계자 징계 의결에 앞서 김경록 PB는 방통심의위와 미디어오늘에 A4용지 5장 분량의 의견진술서를 전달한 바 있다. 심의위원들이 과징금 다음으로 높은 제재 수위인 관계자 징계를 결정한 이유는 인터뷰 당사자인 김 PB가 제출한 의견서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KBS ‘뉴스9’은 지난해 9월11일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아 리포트 2개를 보도했다. 사진=KBS 보도화면 갈무리.
▲KBS ‘뉴스9’은 지난해 9월11일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아 리포트 2개를 보도했다. 사진=KBS 보도화면 갈무리.

당시 의견진술서에는 KBS와 검찰의 유착 관계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PB는 KBS 측이 인터뷰를 제안하면서 검찰과의 관계를 들어 압박했고, KBS 법조팀장이 회유와 설득을 반복하며 인터뷰를 성사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KBS 측은 “방통심의위가 김경록 의견서에 대한 KBS 의견 청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제재수위를 결정한 건 절차적 문제”라며 재심의를 요청했고 방통심의위 상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KBS가 제기한 재심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KBS ‘뉴스9’은 지난해 9월11일 김 PB를 인터뷰를 바탕으로 “정경심, 5촌 조카가 코링크 운용한다 말해”(정새배 기자), “투자처 모른다?…‘WFM 투자 가치 문의’”(하누리 기자) 등 2개 리포트를 보도했다.

보도 취지는 조국 전 장관과 정 교수가 자본시장법과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PB는 KBS 보도에서 조국 전 장관 가족에 불리한 내용을 말했다.

하지만 보도 이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통해 KBS가 김 PB 인터뷰를 공정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유 이사장은 김 PB 인터뷰 녹취를 공개했는데, 여기서 김 PB는 조국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의혹을 5촌 조카인 조범동씨의 사기 행각으로 규정했다. 조 전 장관 가족이 자본시장법과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했을지 모른다는 KBS 보도와 배치되는 주장이라 후폭풍이 거셌다.

27일 재심의 의견진술자로 엄경철 KBS 보도국장이 출석했다. 지난해 해당 보도를 총괄했던 성재호 전 사회부장과 김귀수 전 사회부 법조팀장도 참석했다. 김경록 PB도 회의 현장을 방청했다.

질의에 앞서 강상현 위원장은 “정 교수나 조 전 장관이 자본시장법이나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했는지는 심의위에서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객관적 사실을 다뤘는지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엄경철 보도국장은 “인터뷰 보도 과정에서 불거졌던 여러 민원과 사회적 논란에 깊은 책임을 느끼고 성찰하고 있다. 취재 전반 과정을 검토하고 강화된 검증 기준으로 조금 더 공정한 방송을 위한 내부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영섭 방통심의위 위원이 “김 PB가 제출한 의견서 핵심은 본인이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인터뷰했다는 것인데 맞느냐”고 묻자 김귀수 전 법조팀장은 “김경록씨 입장을 제가 이야기하기 쉽지 않지만 제가 강압적으로 인터뷰를 끌어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심 위원이 “의견서가 사실과 다르냐”고 묻자 김귀수 전 팀장은 “김경록씨가 말한 내용에 일부 사실과 부합하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일부는 과장해 표현했다”고 반박했다.

▲김경록 PB가 지난해 10월8일 ‘유시민의 알릴레오’ 유튜브채널에 출연해 인터뷰했다. 사진=‘유시민의 알릴레오’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김경록 PB가 지난해 10월8일 ‘유시민의 알릴레오’ 유튜브채널에 출연해 인터뷰했다. 사진=‘유시민의 알릴레오’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심 위원은 김경록씨가 지난해 KBS 시청자위원회에 제출한 입장문과 방통심의위에 전달한 의견서 내용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심 위원이 “김경록씨가 지난해 KBS 시청자위원회에 제출한 입장문과 방통심의위 제출한 의견서가 많이 다른데 어떤 게 실제와 부합하냐”고 말하자 김 전 팀장은 “김경록씨가 실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지금 현재 말하는 게 본인 생각이겠지만, KBS에 제출한 의견서랑은 입장이 다르다”고 했다.

앞서 김 PB는 지난해 11월 KBS 시청자위원회에 입장문을 냈다. 당시 김 PB는 “(KBS가) 검찰과 내통이 있었다거나 저를 악의적으로 이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통했다면 검찰이 이미 모든 내용을 알고 그걸 다시 확인하려고 작업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9시뉴스에 방송된 제 인터뷰 내용도 결국 제가 말한 내용에 바탕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해석 차이가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이어 김 PB는 “알릴레오에 나가게 된 이유도 특정 언론사나 언론인들을 공격해서 그들에게 피해를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한 달 동안 직접 느꼈던 검찰과 언론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부당함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김 PB는 27일 미디어오늘에 이 같은 입장문을 써준 이유는 “징계 당할 위기에 처한 김귀수 전 팀장이 써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양승모 KBS 기자협회장도 입장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전광삼 상임위원이 “김귀수 팀장은 송아무개 3차장 검사와 굉장히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나? (김경록씨에게) KBS 인터뷰에 응하면 선처를 부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냐”고 묻자 김 전 팀장은 단호하게 “없다”고 말한 뒤 “제가 검사들과 친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있으나 친분을 이용해 선처해주겠다고 한 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당시 담당 데스크였던 성재호 전 사회부장은 인터뷰 취지를 밝혔다. 성재호 전 부장은 “조 전 장관이 임명된 지 며칠 안 됐다. 그 무렵 정경심 교수의 컴퓨터를 증거 인멸한 혐의를 받는 김경록씨가 조 전 장관이 청문회에서 밝힌 내용과 다른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정보를 들어 인터뷰하게 됐다”며 “인터뷰 취지는 조 전 장관을 알기 위함이 아니라 정 교수 관련 정보를 듣기 위해서였다”라고 주장했다.

심의위원들은 앵커멘트에서 김 PB를 조국 장관의 자산관리인이라고 보도한 점도 객관성 조항 위반이라고 입을 모았다.

허미숙 부위원장이 “앵커멘트에 김 PB를 ‘조국 장관의 자산관리인’이라고 썼다. 우리나라 민법은 부부 별산제다. 어떤 근거로 조 전 장관의 자산관리인이라고 못 박은 건가”라고 묻자 엄경철 보도국장은 “실수다. 의도를 가지고 쓴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소영 위원이 “김 PB가 지난 2월에 제출한 의견진술서에 KBS가 검찰과 내통하고 거래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사실인가”라고 묻자 성재호 전 부장은 “검찰과 거래나 내통이 있었다면 객관성 위반이 문제가 아니다. 언론인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영 위원이 “김 PB가 자신이 발언한 내용에 문제를 제기한 적은 없다. 결국 내용을 봐야 한다. 방송 내용 중 KBS 기자가 ‘김(경록)씨는 나아가 코링크가 조 장관 일가만을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김 PB가 이런 말을 했냐”고 지적하자 성재호 전 부장은 “저희가 그렇게 판단한 것”이라고 답했다. 성 전 부장은 “방송 보도에는 시간 제약이 많다. 문장을 줄이다 보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객관성 조항을 위반할 만큼 사실을 왜곡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심의위원들은 전원 의견으로 재심의 청구를 ‘인용’하기로 했다. 제재 수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의위원 5인(정부·여당 추천 허미숙 부위원장·강진숙·김재영·심영섭·이소영 위원)은 법정제재 ‘주의’를, 정부·여당 추천 강상현 위원장은 법정제재 ‘경고’를 주장했다. 반면 심의위원 2인(미래통합당 추천 전광삼 상임위원, 바른미래당 추천 박상수 위원)은 행정지도 ‘권고’를, 미래통합당 추천 이상로 위원은 ‘문제없음’을 주장했다.

허미숙 부위원장은 “코링크가 조 장관 일가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는 인터뷰 내용이 없었음에도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제목과 앵커 멘트를 보면 마치 조 장관 일가가 위법한 일을 한 것 같다는 이미지만 남는다”고 지적하면서도 “본 안건 심의가 진행되는 동안 KBS가 쇄신안을 발표한 점을 감안한다”고 말했다.

심의위원들은 진실을 구성하는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허 부위원장은 “선택적 편집은 저널리즘의 적이다. 진위를 판단하는 건 기자가 아닌 국민이다. 철저하게 객관적 사실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영 위원도 “일부 단편적 사실을 갖고 여론몰이를 해서는 안 된다. 보도는 인용과 취사선택의 연속이지만 무엇을 어떻게 인용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상로 위원은 “언론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권력 감시다. 권력자와 그 가족을 감시하는 건 언론사 의무이자 권리”라고 말했고 전광삼 상임위원도 “의혹 제기는 언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